대한변협ㆍ서울변회 "알 권리 제한" 주장과 상충
전국 판사 10명 중 8명이 미확정 재판의 판결문 공개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판결문 공개 확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16일부터 27일까지 전국 법관 총 29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바람직한 판결서 공개제도에 관한 법관 설문조사' 결과를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에 게시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117명 가운데 874명(78.25%)이 미확정 형사 판결문의 인터넷 열람·복사에 반대했다.
'미확정된 형사 판결문의 인터넷 열람 및 복사 등이 가능해야 한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는 응답이 402명(35.99%), '매우 그렇지 않다'라는 의견이 472명(42.26%)이었다. 형사 판결문 공개에 찬성한 응답자는 230명(20.59%)에 불과했다.
확정되지 않은 민사 판결문 공개에도 전체 응답자 가운데 782명(70.01%)이 반대했다. '민사 판결문 인터넷 열람과 복사 등이 가능해야 한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는 의견이 503명(45.03%), '매우 그렇지 않다'라는 응답이 279명(24.98%)이었다.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라는 응답은 318명(28.47%)이었다.
형사판결문 임의어(키워드) 검색을 통한 인터넷 열람·복사 역시 '가능하지 않다'와 '매우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이 642명(57.47%)이었다. 키워드 검색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를 합쳐 449명(40.19%)이였다. 키워드 검색이란 사건당사자나 관계인이 원하는 단어로 판결문을 검색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일반인은 대법원 법원도서관에 있는 열람실 컴퓨터 4대로만 검색할 수 있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정했다. 현재 대법원은 민·형사소송법에 따라 확정된 민·형사사건의 비실명화된 판결문을 인터넷으로 열람·복사할 수 있도록 한다. 대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비공개로 처리한다. 다만 판결문을 보려면 법원명과 사건번호, 당사자 이름이 필요하다.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홈페이지와 대법원 법원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합법률정보의 경우 일부 판결문만 공개 대상이다. 금태섭 의원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의 3.2%, 각급 법원 판결의 0.003%만 검색 가능하다. 법원도서관의 경우 열람실 내 컴퓨터 4대가 전부다. 원하는 키워드 검색이 가능하지만, 사건번호를 알아내 해당 법원에 판결문 열람·복사 신청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판결문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이찬희(53·사법연수원 30기)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판결은 일종의 국민 알 권리 대상이자 정보공개 대상"이라며 "올바른 재판 진행을 위해서라도 판결문을 검토하고 연구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최근 보도자료를 내 "판결문 공개가 헌법적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알 수 없는 과도한 정보를 요구해 국민 알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금 의원은 지난 2월 모든 판결문을 비실명화 처리 없이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민·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개인정보 침해 논란에서 법원이 자유롭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판결문 공개 관련 담당 공무원의 면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712명(63.74%)에 이르렀다. 면책 범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365명(32.68%)이었다. 최근 법원 공무원 실수로 개인정보가 들어간 판결문을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 올린 사건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문 공개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사자 프라이버시 문제 같다"며 "개인에 대한 공격이 심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 공개와 관련된 것이라 판사들 의견을 들었다"며 "국민과 함께 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서도 이 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입법이 필요한 것이라 1차로 의견을 수렴했고, 추가로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