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기 정권의 단기성과주의에 경고음 보내지 못한 중앙은행, 금리인상 속도 내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물가가 오른다’라는 이 이론은 그동안 정통경제학 이론과 180도 배치된다는 이유로 한은과 정통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사실상 배척돼 왔다. 이런 점에서 한은의 이 같은 변화는 실로 전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은이 물가 상승을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금리인상 기조를 강화하거나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될 가능성 때문이다.
한은은 올해 물가전망치를 1.6%(상반기 1.4%, 하반기 1.7%)로 예상하고 있다. 한은이 내부적으로 더 중시하는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인플레도 올해 1.6%(상반기 1.4%, 하반기 1.8%)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 전망치는 각각 2.0%로 같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4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하반기에 가면 조금씩 높아져서 1%대 중반 또 그 뒤로 가면 1%대 후반으로 예상한다”며 “타깃에는 약간 미치지 못하지만 금리 결정을 할 때는 현재의 물가보다는 장래의 물가를 더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우선 2014년 4월 이주열 총재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다섯 번이나 인하해 당초 2.5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1.25%까지 내린 데 대한 반성(?)의 의미가 있다. 그간 금리를 인하하면서 경기부양과 낮은 물가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해왔지만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물가는 되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 소위 초이노믹스로 대표되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에 편승해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되레 가계부채만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정부의 압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 2.00%까지 인하했던 전력과 겹쳐지면서 최근 한은 내부에서조차 내려도 너무 내렸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지난해 11월 6년 5개월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하고자 하는 인식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그간의 인하 정책으로 확대된 완화 정도를 최소한 중립 수준(2.00% 추정)까지 되돌리고자 하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해 인상과 향후 인상 기조를 긴축이 아닌 ‘완화 정도의 조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물가 상승은 예년만큼 높지 않아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 실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한 금통위원은 “완화적 기조를 다소 축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좀 더 확인해야 할 사항으로 물가의 진행 경로 등을 꼽았다.
시장 인식도 비슷하다. 미국 연준(Fed)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조짐을 보이는 와중에도 최근 낮은 인플레 등으로 인해 한은은 올 하반기에나 금리 인상을 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연내 금리 인상이 아예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을 보면 기준금리가 1.25%였던 2016년 6월 0.7%에 머물렀다. 작년 초 2%를 넘나들던 물가는 지난해 10월 이후 다시 1%대 상승세로 주저앉았다. 지난달엔 1.5% 상승에 그쳐 한은의 물가목표치 2.0%와는 거리가 있다.
이주열 총재는 4일 콘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네오피셔리즘을 제1주제로 정한 것과 관련해 “(금리인상을 염두에 둔) 의도가 있지는 않다”면서도 “중앙은행의 정책 환경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앞서 이날 개회사를 통해 “필립스 곡선의 평탄화, 낮아진 중립 금리, 자국 통화정책의 전이(spill-over) 효과와 역전이(spill-back) 효과 등의 측면에서 통화정책 환경이 변했다”고 진단하면서 “중앙은행에 부여된 역할을 어떻게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또한 새로이 요구되는 역할은 없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율이 명목금리보다 장기 균형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하면서 실질금리가 감소하고 국내총생산(GDP)도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경우 인플레이션에 대한 반응은 미국과 동일하게 신피셔 효과를 지지했으나, GDP에 대한 반응은 단기적으로 하락하다 2분기 이후 반등했다. 반면 일시적 금리 인상 충격은 실질금리 상승을 통해 GDP를 감소시키며 인플레이션율을 하락시키는 등 통상적인 예측과 일치했다고 덧붙였다.
마틴 유리베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금리 하한에서도 인플레이션율이 목표 수준을 장기간 하회하는 상황에서는 명목금리를 장기 균형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상승시키는 정책이 실물경기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달성할 수 있는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셔 효과는 명목금리와 인플레이션율 간 일대일 관계가 장기적으로 성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신피셔 효과는 이런 관계가 단기적으로도 성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의 이론 연구들은 항구적이고 신뢰성 있는 명목금리 인상이 기대인플레이션을 즉각 상승시켜 신피셔 효과가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2016년 7월 스티븐 윌리엄슨 이코노미스트가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네오피셔리즘, 저인플레이션 문제 해결을 위한 급진적 아이디어 또는 가장 눈에 띄는 해결책’이라는 보고서를 들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54년 3분기부터 2015년 4분기까지를 분석한 결과 Fed가 금리를 올릴 때 물가가 올랐다. 또 금리를 인하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존 이론이 그간 들어맞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이를 기반으로 중앙은행이 명목금리를 올림으로써 시장의 기대인플레를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이는 기존 피셔방정식으로 알려진 명목이자율(R)은 실질이자율(r)과 기대인플레(π)의 합이라는 데 기반한다. 즉, 실질금리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명목금리 하락은 인플레이션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기준금리 인하가 물가 상승이 아닌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한은 금통위원들은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한 금통위원은 “전통이론과는 다르지만 일견 일리는 있다”면서도 “여러 상황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모형과 이론을 만들고 그게 현실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이론가들은 거기에 매몰되기도 한다”며 “그 자체가 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표적 정통 경제학자 출신인 조동철 위원은 한은이 금리인하를 하고서도 물가가 낮은 이유에 대해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금리인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네오피셔리즘과는 정반대 입장인 셈이다.
그는 지난달 9일 한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표준적 경제이론에 의하면 통화당국이 거시경제를 효과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플레이션 변동보다 더 큰 폭으로 조정해야 한다.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테일러 룰의 인플레이션 갭에 대한 계수가 1보다 커야 한다”며 “2013년 당시 통화정책과 관련해 낮은 인플레보다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 긴축발작)에 따른 자본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더 커 국내 기준금리를 미국 기준금리보다 상당히 높게 유지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