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리더십연구소장
예스맨보다 No맨이 되라. 이는 조직에서 직언을 서슴지 않는 충신이나 까칠한 이기주의자를 위한 자기방어용 처세술이 아니다. 삶의 성공적 운영 자세에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필자가 만난 여러 성공적 리더들이 말한 “호의를 베풀망정 호구가 되진 말라”와도 통한다.
번 아웃(burn out) 증후군은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못한 채 제대로 자를 것을 자르지 못하면 자기 앞가림도 못 한다. 호의를 베풀려다 호구, 호갱이 되고 만다. 호의와 호구의 차이는 기준과 분수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린다.
“남에게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 “착한 사람이 복받는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레퍼터리다. 축사의 3분의 2가 이 메시지를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선의는 선의를 낳고 협력을 촉발해 긍정 전염을 일으킨다. 교과서 속 권선징악의 교훈과 현실의 충고 사이에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게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다. 문제는 호의를 호구로 보고 뒤통수를 칠 때 발생한다.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최근 논문 ‘제대로 선행하는 법을 아는 리더들’에서 선한 인품 때문에 거절을 못해 탈진당하는 것을 호의탈진이라 명명한다. 호구가 되느라 에너지가 탈진될 때 정작 호의를 베풀기 힘들다. 선의에도 전략적 시혜가 필요하다. 분수를 모르고 무조건 덥석덥석 수용할 때 호의는 오지랖 푼수로 전락한다고 주장했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지만 알고 보면 전략적 거절의 달인이었다. 그가 말하는 군자는 무골호인보다 호의를 베풀되 기준이 있는[惠而不費] 리더였다. 공자는 실제로 자신의 형편이 안 되면서 옆집에서 식초를 빌려다 도와준 미생을 “어질다”고 칭찬하지 않았다. 공자는 스스로에게도 거절의 기준이 분명했다. 위(衛)나라 영공이 군사전략이나 병법에 대해 묻자 이렇게 반응한다. “저는 제기(祭器)에 관한 일은 일찍이 배운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관한 것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음 날 해가 밝기가 무섭게 위나라를 뜬다. 공자가 병법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은 거절의 말일 뿐이다. 실제로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무인 출신으로 용맹한 장수로 인정을 받았다. 또 제자 염구는 스승 공자에게서 무예를 배워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고 스스로 밝힌 바도 있다. 공자는 자신의 분수, 기량을 펼칠 만한 것이 아니라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며 거절했다.
거절의 거(拒)는 손[手]에 큰 무기[巨]를 들고 있는 것과 같다. 영어 리젝트(reject)의 어원 또한 마찬가지다. 뒤로 다시 던지는 것이다. 거절은 삶의 큰 무기이며, 기회를 다시 던진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워런 버핏의 35억짜리 교훈의 의미와 통하지 않는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거절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나의 분수를 알고 상대의 특성을 알 때 지혜로운 거절맨이 될 수 있다. 착한 당신, 오늘 거절의 죄책감으로 마지못해 예스를 외치고 있지는 않는가. 이기적이어서 거절하는 게 아니라 더 잘 도와주기 위해서 거절한다고 생각을 치환해보라. 베풀되 이용당하지는 말라. 푼수, 호구보다 전략적 이타주의자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