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와 기재부는 금융공기업 희망퇴직제 가이드라인 설계 작업에 착수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8일 열린 여성금융포럼에서 “옛 기획예산처 시절 남아있던 지침 때문에 (퇴직금 추가 지급이) 막혔었는데 기재부 반대를 설득해서 지침 적용을 안 하기로 했다”며 “(퇴직금을) 더 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퇴직금 추가 지급을 두고 이견을 보이던 금융위와 기재부가 일정 부분 합의점을 도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위원장은 금융공기업 희망퇴직을 위해 퇴직금을 올리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왔다. 지난달 9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면 10명이 퇴직할 때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희망퇴직제를 이용해 신규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금융위원회 산하 준정부기관인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주택금융공사와 기타 공공기관인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한국예탁결제원, 기재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인 수출입은행 등이 대상이다. 이들 금융공기업은 기재부와 조율을 거쳐 희망퇴직 인원과 퇴직 위로금 규모 등을 확정한다. 정부는 기존 명예퇴직금 외에 추가 위로금 등을 지급하는 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융공기업 직원들도 규정에 따라 명예퇴직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이를 이용하는 직원이 드물었다. 통상 36개월치 이상 급여를 희망퇴직자에게 주는 시중은행과 달리 명예 퇴직금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옛 기획예산처가 1998년 당시 정한 ‘공공기관 명예퇴직제도 개선안’에 따르면 퇴직자에게 잔여 임기 5년까지 기존 월급 절반에 정년까지 남은 개월 수를 곱한 금액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월급 600만 원을 받는 직원이 58세에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300만 원에 24개월을 곱해 총 7200만 원을 준다.
직원들은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받고 그만두기보단 임금피크제하에서 버티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판단이다. 현재 모든 금융공기업은 만 55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로 버티지 누가 1억 원 상당 퇴직금을 받고 나가겠냐”며 현재 인력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공기업은 희망퇴직제 도입을 반기며 정부 지침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산업은행 등은 과거 퇴직금 외 별도 위로금을 지급하는 상시 명예퇴직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2014년 ‘혈세 낭비’라며 제동을 걸면서 사라졌다. 국책은행 고위 관계자는 “연초부터 (희망퇴직제를) 도입한다고 변죽만 울리고 시간이 흐르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청년층 채용을 늘릴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위해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 측은 예산이 걸려 있어 신중한 모습이다. 퇴직금 및 위로금 지급 시 기업은행처럼 경영상 흑자를 내는 경우 자체 재원으로 충당이 가능하지만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일부 금융공기업은 정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의 부채비율은 575%, 한국예탁결제원 175%, 한국자산관리공사 104%, 한국주택금융공사는 109%에 달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과 인력 규모 등을 검토 중”이라며 “어느 정도 채용 효과가 있는지 관련 기관들로부터 자료를 받고 협의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다른 부처 산하 공공기관과의 형평성도 고려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희망퇴직제를 시행하면 비슷한 규모로 신규채용이 이뤄질지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 신규채용 인원은 총 1825명으로 전체 명예퇴직자의 절반에 못 미쳤다. 한 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거래 확대로 영업점이 줄면서 늘어난 구조조정 인원만큼 신규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공기업들은 연초 정한 채용 규모대로 실시하되 정부 가이드라인이 정해지면 새로운 지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상반기에 기업은행은 170명, 한국예탁결제원은 17명을 선발했다. 산업은행이 하반기에 60여 명, 수출입은행 20여 명, 자산관리공사 40명, 예금보험공사 20여 명, 신용보증기금이 100여 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주택금융공사는 현재 신입직원 35명을 뽑기 위해 공채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