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생아 수 35만8000명ㆍ합계출산율 1.05명 역대 최저치 기록
2022년 출생아 수 30만명대 붕괴…통계청 전망보다 18년 앞당겨져
임금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단축 확대…저소득층 자녀 의료비 지원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5일 발표한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는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됐다.
특히 이번 대책에서는 합계 출산율 목표치가 제시되지 않았다. 2022년 연간 출생아 수가 20만 명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따라서 대책의 목표도 출산율 상승이 아닌, 출생아 수 감소세 둔화에 맞춰졌다.
특위 관계자는 “합계 출산율 1.00명이 무너질 상황이어서 목표를 잡지 않고, 대신 출생아 수 감소 속도를 완화시키는 단기 정책에 주안점을 뒀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적정 인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출생아 수는 어느 정도가 돼야 하는지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정 투자도 보육 위주였던 기존과 달리 일·생활 균형, 모든 아동·가족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대책에서 특위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은 결혼·출산·육아를 선택하는 경우 발생하는 높은 기회비용을 저출산의 핵심 원인으로 봤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35만8000명, 합계 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 30만 명 진입 시점이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보다 18년 앞당겨진 상황이다. 특위는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합계 출산율이 1.00명 미만으로 떨어지고, 2022년 출생아 수가 20만 명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위는 우리 사회구조에서 개인이 결혼·출산·양육의 삶의 경로를 선택하면 높은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결혼·출산 기피 현상이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기회비용이란 주거비, 교육비, 경력단절, 장시간 근로, 독박육아 등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출산·양육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여성에 집중돼 결혼·출산 포기나 결혼·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늘어나고 있다.
모성보호제도를 활용한 일·생활 균형 지원이 핵심과제로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대책에는 여성이 일하면서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확대하고, 남성 육아휴직 및 동반 육아휴직을 장려함으로써 한쪽에 쏠린 양육 부담을 나누는 방안들이 포함됐다.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육아 자체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이다. 2015년 한국보건산업연구원의 전국 출산력 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들은 평균 2.25명의 자녀를 희망하지만 실제로는 1.75명만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이상 자녀 수와 실제 간 간극이 크게 나타났다. 이는 이번에 자녀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 대폭 확대된 배경이다.
특위 관계자는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출산율을 강요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낳지 않을까 본다”며 “결혼한 부부들이 희망하는 자녀 수가 2명인데, 1명을 낳아 부담이 들지 않으면 2명까지는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로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특위는 비혼 출산·양육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차별도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로 봤다. 가족관계등록법과 민법 등에는 여전히 혼인 여부 등에 따른 차별적 조항이 존재하고, 성(姓)이나 가족관계를 이유로 한 사회적 편견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014년 우리나라의 비혼출산율은 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9.9%에 크게 못 미친다. 여기에 출산하더라도 다른 가정에 입양을 보내는 가구가 대다수다.
이에 따라 이번 대책에는 불합리한 제도·문화 개선 및 상담·지원을 강화하는 대책들도 함께 포함됐다. 특위는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열악한 양육여건 등으로 직접 양육이 어려워 유기·입양 등을 선택하는 현실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대책에 필요한 추가 재정은 약 9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대책을 구체화하고, 대책이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위 관계자는 “오늘 발표한 대책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는, 시행이 빨리 필요한 것들을 정리한 것”이라며 “10월 3차 종합계획에서 재구조화 대책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