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즉 읽는 소리는 같은데 뜻은 완전히 다른 말들이 참 많다. 예를 들자면, ‘사기’라고 읽은 동음의 단어에 담긴 다른 뜻은 ‘사기(史記;역사 기록, 역사 책)’, ‘사기(士氣:굽힐 줄 모르는 기세)’, ‘사기(詐欺:속임)’ 등 무려 40개 이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동음이의어는 한자를 통해서만 구별이 가능하다. 우리의 문자 생활에서 한자를 배제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흔히 쓰는 ‘반려’라는 말에도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반려동물’의 반려는 ‘伴侶’라고 쓰며 각 글자는 ‘짝 반’, ‘짝 려’라고 훈독한다. 사람과 짝하여 함께 살아가는 반려자(伴侶者)와 같은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반려는 사표를 반려할 때도 사용한다. 이때의 반려는 ‘返戾’라고 쓰며 각 글자는 ‘돌아올 반’, ‘어그러질 려’라고 훈독한다. ‘일이 어그러져 되돌아오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국어사전은 이 返戾를 “윗사람이나 상급기관에 제출한 문서를 처리하지 않고 되돌려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표 반려’는 곧 아랫사람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受理:받아서 처리함)하지 않고 되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사의를 표명한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 비서실장이 “첫눈이 내릴 때 놓아 주겠다”는 표현을 한 것을 두고 더러 “지나치게 감정적인 표현” 운운하는 평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에서는 “사의를 반려했다”는 표현을 했다. 맞지 않는 표현이다. 사표는 문서로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반려할 수 있지만 사의는 문서가 없이 말을 통에 뜻을 표명한 것이기 때문에 반려할 게 없다. 따라서 사의 표명에 대해서는 ‘만류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매끄러운 표현이다.
분수를 아는 아름다운 사의 표명은 만류하여 다시 伴侶 관계가 되어야 하지만 부적절한 행동에 따른 사의 표명은 곧바로 사표 수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