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래 의혹’, ‘사법 농단’, 그리고 일부 판사의 ‘일탈’까지 사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국민들은 법원과 판사를 믿지 않는다. 판결이 나오면 의심부터 한다.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하는 법관사회가 어쩌다 이런 굴욕적인 상황을 맞게 됐을까.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인데, 자초했다.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은 여전히 얼얼함이 가시질 않는다. 일부 판사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도 내팽개쳤다. 법원행정처는 동료 판사들의 재산과 사생활을 뒷조사했고, 대법원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판결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고 사실관계에 따라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겠지만, 그렇다고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의 사법 농단 수사는 더욱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법원행정처는 미온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 장기화할 경우 우려했던 부작용이 벌써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이영훈 부장판사는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을 선고하기 전에 자신에게 제기된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재판장이 법정에서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으로 있었던 자신의 경력을 들어 사법 농단 사태에 연루 의혹을 제기한 한 언론사의 기사를 문제 삼았다.
이 부장판사는 “사실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의혹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번 재판에 대해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이번 보도가 국정원 특활비 뇌물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되는 것에 대한 불만의 우회적 표출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라고도 했다.
재판장이 선고를 앞두고 사건과 무관한 개인적인 일을 언급한 것은 적절치 않다. 할 말이 있으면 절차를 밟아 공보관을 통해 해명해도 될 일이다.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법관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도덕성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는 신뢰의 근간이다. 여성 변호사에게 전화 상담을 빙자한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은 판사, 금품 수수와 가정 폭력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판사 등 최근 좋지 않은 소식이 자주 들린다.
판사는 국회의원 등과 달리 선출직이 아니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만큼 판사들은 더욱 양심적이어야 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오로지 법 논리를 통해 정의를 수호하라고 헌법이 내려준 법복의 무게를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