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른바 계엄령에 관한 부분이다. 이미 공개된, 촛불집회 당시 위수령과 계엄령에 대한 검토 보고서가 실행을 위한 계획서로 밝혀질 경우, 이는 분명 심각한 군의 정치개입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문건이 실행을 위한 계획서였는지, 아니면 국가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건이었는지는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건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몇 가지 의문점은 해소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궁금한 점은 ‘청와대에 이 문건의 존재와 내용이 언제 구체적으로 알려졌는가’이다. 청와대 측은 “청와대 보고 여부에 대해서는 칼로 두부를 자르듯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현재로서는 사실 관계에서 ‘회색 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해당 문건과 관련해 보고받은 시점은 3월 16일이다. 그리고 송영무 장관이 해당 문건의 존재를 청와대에 알린 것은 4월 30일이다. 송영무 장관은 “4월 30일 기무사 개혁 방안을 놓고 청와대 참모진과 논의했고, 이 과정에서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히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구두로 보고했지 문건을 제출한 것은 아니라는 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와대도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4월 30일 회의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수석이 참석한 회의였고, 회의에서 해당 문건의 존재와 내용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있었다는 점은 청와대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언급을 종합해 보면, 당시 회의에서는 송 장관이 ‘지나가듯이’ 해당 문건을 언급했다는 말이 된다. 해당 문건이 공식 보고된 것은 6월 28일로 알려졌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 순방 중에 수사를 지시하고 독립 수사기관을 설치하라고 명령한 것은 7월 10일이다.
궁금증이 생긴다. 첫째, 송 장관은 3월 16일 보고를 받고 4월 30일에 청와대에 ‘지나가듯이’ 보고했다는 것인데, 당시 늦게 보고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송 장관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기에 정치적인 판단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문건이 대통령이 외국 순방 중에 수사를 긴급히 지시할 정도로 위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는 선거를 의식해 보고를 늦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한 내부 감찰은 진행했어야 했다.
둘째, 4월 30일에 ‘지나가듯이’ 보고했다는데, 보고자가 아무리 지나가듯이 말했다 하더라도 계엄을 실행할 수 있는 문건이라고 가정할 때, 청와대 측은 이런 걸 놓쳐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셋째, 6월 28일 청와대가 해당 문건을 봤을 때 긴급히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12일이 지난 후에야 대통령의 수사 지시가 있었다는 점은 썩 와닿지 않는다.
언론에 따르면 청와대는 “6월 28일 문건을 받고 나서 검토에 들어간 것이고, 단순히 문건뿐 아니라 당시 정황 등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쿠데타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문건이라면 일단 수사를 지시하고 그다음에 문건을 검토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군의 정치 개입에 관한 문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래서 청와대는 ‘회색 지대’를 없애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