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의 ‘즉시연금 일괄구제’ 권고를 사실상 거부하고 일부만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이 정치적인 논리를 앞세워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보험사의 책임 소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마땅히 일괄지급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26일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문제는 법적으로 불완전판매에 가깝다”고 일축했다. 금감원이 약관을 승인해놓고 문제가 되자 되레 보험사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약관승인을 했더라도 애초에 약관을 만드는 법률적인 책임은 삼성생명에 있다”며 “가이드라인은 최소한의 요구사항만 있는 것인데 이것만 갖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한국의 금융 관련 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법은 너무 촘촘하다”며 “보험사들이 피해나갈 구멍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 같은 경우는 금융법이 느슨한 대신 사고가 나면 과징금을 세게 부과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금융 규제를 조금 완화하는 대신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즉시연금 일괄지급 권고는 부당하며, 과도한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문제가 있으면 법률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금감원이 삼성생명한테 요구한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이라며 “이 사안 자체가 잘못됐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라, 삼성전자 주식 매각 등 다른 정치적 현안과 맞닿아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만약 삼성생명이 일괄지급 권고를 받아들였따면 나쁜 사례로 남았을 것”이라며 “지금이야 즉시연금 상품에 한정된 이슈지만 사실상 보험상품 전반에 다 걸려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도 “정권이 삼성그룹에게 지배구조 해체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번 사안도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가 너무 소비자보호에 매몰돼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보험사들에게는 현재 새 회계제도(IFRS 17) 도입 등 과제가 산적해있다”며 “너무 소비자보호만 강조하다보면 오히려 부메랑처럼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중재적인 입장을 취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