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국회 특활비와 현실정치

입력 2018-08-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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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가 자신들의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겠단다. 아마도 많은 국민은 모처럼 국회가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본래 특활비란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을 하는 데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의미한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이에 준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예전부터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가 스스로 특활비를 폐지하겠다고 하니,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특활비를 폐지하는 대신 업무추진비를 증액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이름만 바뀔 뿐 ‘이런 돈’은 계속 존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를 비난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국회가 특활비를 그동안 어디에 썼는지도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어낸 과거의 일부 자료를 토대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특활비란 영수증이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국회 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 등 보직이 있어야 정기적으로 특활비를 받을 수 있지만 이들 이외에 상임위 간사나 일반 의원들도 특활비의 ‘혜택’을 받을 때가 있다. 언론에 보도된 18대 국회 상임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 달에 600만 원을 받으면 200만 원은 상임위원장실에서, 나머지 400만 원은 여야 간사가 나눠 가졌고, 상임위원장실에서 가져간 200만 원은 화환을 보내거나 상임위가 열릴 때 의원들에게 줄 물과 간식을 사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다른 관계자는 “주요 상임위 간사에게는 월 수백만 원을 떼 준 예도 있고, 주로 의원들의 회식비와 보좌관 의정활동 비용으로 썼다”고 말했다. 또 국정감사 기간에는 모든 국회의원이 100여만 원씩 특활비를 나눠 갖기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화환 비용과 같은 이른바 ‘예의를 차리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나마 지금은 김영란법 덕분에 이 비용이 줄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이런 ‘격식 차리기 비용’이 여전히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감 기간 의원들에게 나눠 준 특활비는 국감을 준비하느라 밤샘 작업을 하는 의원 보좌진의 야식 비용 등으로 지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의원들의 회식비는 불필요한 지출 항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좌진의 의정활동 비용이라는 것은 필요한 비용일 수도 있다. 그래서 특활비 전체를 무조건 없앨 경우, 정치권은 또 다른 ‘음성적 자금원’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돈 안 드는 선거, 돈 안 드는 정치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치고 돈 안 드는 선거, 돈 안 드는 정치를 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용어를 고쳐 사용해야 한다. 돈 적게 드는 선거, 돈 적게 드는 정치로.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는 아직도 고비용적 구조로 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 즉, 우리나라에서 정치하려면 돈이 아직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돈 많이 드는 우리나라 정치구조는 그냥 놔둔 상태에서 특활비만을 없앨 경우, 정치인들이 또 다른 자금 조달 창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당위론과 현실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국회의 특활비 용처를 법제화하고, 집행 내역을 검증할 수 있게 하는 안을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고비용 정치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당위론도 좋지만 무조건 당위론만을 강조하다 보면,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음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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