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희의 통상브리핑] 9부 능선 넘어선 RCEP 협상

입력 2018-08-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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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방콕에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 제23차 협상이 개최되었다. RCEP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메가 FTA이다. 이번 협상에서 통관과 정부조달 분야 타결 등 일부 성과를 도출했지만 아직 시장개방 관련 핵심 쟁점은 합의하지 못했다.

지금 RCEP 협상에서 최우선 목표는 연내 타결이다. 도쿄 경제장관회의에서 연내 큰 틀에서 협정을 타결한다는 정상 공동성명을 재확인했지만 실현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최근 한·싱가포르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금 중요한 것은 개방 수준보다 타이밍이라며 연내 타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실 RCEP의 개념은 한국이 설계했다. 1998년 12월 하노이에서 개최된 ASEAN+3 정상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께서 동아시아 비전그룹(EAVG)을 제안하면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아이디어는 한국이 제안했지만, 지금의 RCEP는 ASEAN이 주도하고 있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ASEAN 회원국 간 단합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대항마로 RCEP를 활용해 왔다. 한편, 중국은 RCEP의 전략적 함의에 주목하고 동아시아 경제영역 확장의 디딤돌로 삼고 있지만, 일본은 RCEP에서 높은 수준의 규범을 주장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2013년 5월 시작된 RCEP 협상은 애초 2015년 말 타결이 목표였지만 합의 도출이 늦어지면서 협상시한이 매년 연장되었다. 2015년 8월 장관회의에서 전반적인 협상의 틀(모델리티)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부산에서 개최된 10차 협상 때부터 시장 접근 협상이 추진되어 왔다. 상품·서비스·투자 자유화 방식 관련 기본 모델리티 협상에만 2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공통양허에 대한 국가별 예외 허용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4차례 정상회의, 11차례 통상장관회의, 23차례 공식협상 이외 셀 수 없는 회기간 비공식 협상 등으로 협상 참여국 모두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이 RCEP가 지연된 가장 큰 원인은 참여국들의 수준 차가 크기 때문이다. 단일 목소리를 내는 ASEAN도 내부 이견 조율에 장시간이 소요되고, 여타 6개 국가들은 사안별로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다. ‘중심성(Centrality)’을 강조하는 ASEAN은 상품 분야에서는 기존 FTA 이상의 개방을 원하면서도 서비스·투자·규범 분야에서 예외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호주는 시장개방 및 전자상거래·지재권 등 규범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인도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한국은 대체로 높은 수준의 포괄적 협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제조업에서는 일본, 농수산업에서는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개방 폭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특히, 상품 협상에서 공통양허를 기반으로 국가별 특수성과 이해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전체 협상 타결의 관건이다.

하반기에는 싱가포르 장관회의, 제24차 뉴질랜드 공식협상 등 2차례 공식 협상만 남아 있고, 연말에는 RCEP 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그동안 40여 차례 협상 이후 바야흐로 9부 능선은 넘어선 셈이다. 일부에서 낮은 개방 수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RCEP는 분명 우리에게는 수출 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34억 명)과 세계 GDP의 3분의 1(20조 달러)을 차지하는 거대 경제블록 탄생으로 시장개방 확대는 물론 원산지 기준 통일 등으로 역내 생산 네트워크와 가치사슬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RCEP는 기체결 FTA를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향후 타결될 한·중·일 FTA 협상의 준거 기준이 될 것이므로 끝까지 핵심 이익을 지키고 전략적 접근을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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