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자산총액 10조 기준, 경제력 집중 방지 못해”… GDP 연동해도 자산규모 격차는 해소 안돼
현행 기업집단 지정기준이 제도의 본래 목적인 ‘경제력 집중 방지’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GDP(국내총생산)의 0.5%를 기업집단지정 기준으로 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기준은 획일적이어서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GDP 비율을 반영하는 방안은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최은진 입법조사관보는 ‘기업집단 지정기준 개선 관련 쟁점’을 주제로 최근 발간한 ‘이슈와 논점’에서 “기업집단 지정기준에 GDP의 일정 비율을 연동하는 방안은 경제지표를 자동으로 반영해 현행 제도의 공백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입법조사관보에 따르면 기업집단 지정기준을 GDP와 연동하면 통상적으로 GDP는 완만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지정 기업집단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또 경제여건 변화가 자동 반영돼 합리적이다. GDP의 일정 비율로 0.5%가 적합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자산총액 10조 원 기준을 ‘GDP 대비 0.5%’로 변경해 경제상황과 연동시켰을 경우 기업집단은 2027년 38개로 10조 원 기준과 12개 차이를 보였다. ‘GDP 대비1%’로 변경할 경우 2027년 19개로 감소해 10조 원 기준과 27개의 차이를 보였다.
실제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GDP 대비 0.5% 비율로 지정제도를 변경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GDP를 기준으로 지정기준을 재정립하는 데 동의하고 GDP의 0.5%를 지정기준으로 법에 명시하는 데 합의했다. 다만 GDP의 반영비율에 따라 지정되는 기업집단의 수가 많이 차이가 날 수 있어 경제력 집중 경향과 집행의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실증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입법조사관보는 “제도를 변경하는 경우 현행 기준과 괴리가 적은 기준을 선택해야 사업자들에게 기업집단 지정 여부에 관한 법적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다”며 “공정위 특별위원회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도 GDP 대비 0.5%의 수치적 기준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GDP의 일정 비율을 기준으로 도입하는 경우에도 기업집단 간 자산규모의 격차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일부 상위권 기업집단과 다수의 중위권 기업집단이 와해됐고, 이 중 상당수가 일부 최상위권 대기업집단으로 흡수돼 집중화 현상이 심화했다”면서 “이러한 경우 일단 지정기준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에 속하게 되면 최상위권과 나머지 기업 집단에 차등 없이 획일화된 규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에 관해 기업집단 간 편차를 줄이는 방안이나 기업집단을 보다 구체적으로 세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공정거래법 이외에도 금융·조세·산업 등 여러 분야의 규제 및 지원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 현행 기업집단 지정기준은 기업집단 수의 변화가 안정적이고 규제대상 여부에 대한 단기적 예측 가능성이 높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변화하면서 경제력 집중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현행 기준은 기업집단 전체의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자산총액의 절대 규모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집단의 장기적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고, 기준의 적정성을 주기적으로 평가함으로 인한 행정비용이 발생한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최 입법조사관보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집단’이 사실상 ‘재벌’이라고 이해되고 있어 기업집단을 잘못 지정하게 되면 정책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지정기준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며 “우리나라의 기업집단 지정기준은 그동안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구분 방식으로 제도의 본래 목적인 ‘경제력 집중 방지’를 충분하게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말했다.
기업집단 지정기준은 제도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됐다. 현재의 지정기준은 2016년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확정됐다. 공정위는 3년마다 국민경제 규모의 변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자산총액의 변화 및 차이 등을 고려해 지정 기준이 됐던 자산 총액 합계액의 타당성을 검토한 후 자산총액 합계액의 조정 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변경될 때마다 적정 수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