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보호주의’ 확산 따른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데이터주권 인식 전환 등 재정비 시급
4차 산업혁명 시대 ‘데이터’는 혁신성장을 위한 핵심 요소가 됐다. 데이터는 정보 집약적 산업 확대로 제품·서비스·프로세스를 지원하는 보조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중요 자산으로 변하고 있다.
데이터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국가·개인의 ‘데이터 주권’이란 개념이 부상하게 됐다. 데이터 주권은 개인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공정한 계약하에 정보 사용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데이터가 자본이 돼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 등장하는 시기에 각 국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데이터 시대에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고,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지난달 23일 내놓은 ‘데이터 주권 부상과 데이터 활용 패러다임의 전환’ 보고서에 이에 대한 해답이 담겨져 있다.
◇데이터 주권 강화 나선 EU = EU는 글로벌 IT 대기업들의 독점 경향이 강해지면서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즉 공정하고 투명한 데이터 경제를 실현하고, 개인에게 데이터 주권을 부여해 스스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이다. 5월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사용자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 처리와 활용을 강조하고, EU 국가 간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 보장을 명시했다. GDPR에서 명시한 데이터 이동권은 개인 선택의 자유와 데이터 자기결정권을 강화한다. 개인은 기업에게서 제공받은 데이터 판매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 행사가 가능해진다. 또한 GDPR는 자국민 데이터 국외이전 허용 조건과 절차를 규정화해 데이터 보호도 강화한다. EU는 GDPR에 제시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정보주체 동의가 없는 개인 데이터 국외이전을 허용한다.
EU는 이외에도 개인이 데이터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데이터 관리·활용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재 추진 중인 R&D 프로그램 ‘Horizon 2020’ 세부과제로 개인 데이터관리 서비스 개발을 추진 중이다.
◇‘데이터 소비자’ 권리 마련한 미국 = 미국은 개인 데이터 주권을 소비자 권리로 규정해 산업발전을 위한 신뢰기반으로 삼아왔다. 개인이 데이터 활용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시행한 제도가 HIPAA다. HIPAA는 건강보험 정보 이전 및 책임에 관한 법을 일컫는다. HIPAA를 통해 개인은 의료 데이터 사본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게 됐고, 의료 데이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또한 유럽 못지않게 개인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프라이버시 정책도 추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바마 정부 때 도입된 ‘소비자 프라이버시 권리장전’이다. 권리장전에는 △소비자는 기업이 수집하는 자신의 개인 데이터 활용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자기정보 통제권’ △소비자는 기업에 개인 데이터의 안전한 관리와 처리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정보보호’ 등이 명시돼 있다.
이외에도 데이터 활용 편익 극대화, 위험 최소화를 위해 개인 데이터 권리 강화와 데이터 프레임워크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개인 데이터 보호 관리, 산업 활성화 두 마리 토끼 잡으려는 일본 = 일본은 유럽, 미국과 마찬가지로 개인 데이터 주권 강화를 위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또한 데이터를 활용한 산업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기존 법안을 수정하면서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했다. 작년 5월 기존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개인정보 정의를 명확히 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개인정보 주체 결정권을 강화하면서 민간시장 자율성을 존중하는 데이터 유통 인프라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정보거래 중개기업이 개인 데이터를 관리하고, 개인이 정한 조건에 따라 개인 대신 타당성을 판단해 제3자에게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이터 유통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제3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장벽을 낮춰, 정보주체 중심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개인보다 국가 앞세운 중국 = 중국은 앞서 언급된 나라와 달리 데이터 권리에서 ‘국가’를 강조한다. 중국 정부는 자국 영토 내 인터넷 사용에 대한 통제·규제 권리를 주장하며 국가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고자 한다.
국가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시행된 제도가 바로 ‘황금 방패 시스템’이다. 이 제도는 중국 공안이 운영하는 인터넷 검열 및 접속 차단 시스템이다. 황금 방패 시스템을 통해 중국은 국민의 해외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기업에는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콘텐츠 검열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데이터 주권 강화뿐만 아니라 데이터 산업 활성화에도 나서고 있다. 2014년 귀양 글로벌 빅데이터 거래소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7개 빅데이터 거래소를 설립하는 등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 거래소를 설립해 데이터 유통 및 활용을 촉진하고 있다. 거래소는 데이터 처리, 가공과 유지·공급 역할을 수행하며 자체 거래 플랫폼을 기반으로 회원사 간 거래를 중개한다.
◇새로운 데이터 시대 우리나라 걸어야 할 길은 =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개인 데이터 주권 개념을 일찍부터 인식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움직임이 느린 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서야 개인보호 권리 강화 관련 개념 및 제도를 논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정보 주체 ‘데이터 이동권’을 도입해 개인의 적극적인 개인 데이터 관리를 보장하고, 국외 이전 중단 명령권을 통해 데이터 활용 안정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데이터 활용 방안과 관련해서 6월에는 마이 데이터 도입을 발표 했다. 마이 데이터는 정보 주체가 기관으로부터 개인의 데이터를 직접 내려받아 이용·공유할 수 있게 하는 데이터 활용 방식이다. 정부는 국민이 바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의료, 금융, 통신 분야부터 시범사업을 추진,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데이터 시대에 대비해 우리나라는 우선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데이터에 대한 불안한 보호에서 안전한 활용으로, 폐쇄적 보관에서 적극적 제공으로, 무조건 수집에서 가치 데이터 선별로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데이터 제공 주체인 소비자를 데이터 시대 이해관계자로 편입시켜 정보 제공·공유 등에 참여하도록 데이터 주권을 보다 확실히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데이터 주권 강화 관련 민간 참여 유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는 데이터 활용 생태계 선순환을 촉진하고 데이터 활용 역량을 향상시켜 데이터 기반 혁신 창출을 유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