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쏠림·중간재 부진·G2 집중 먹구름 우려… 대외여건 불안 속 수출 호조세는 지속
한국 경제는 수출 주도로 성장한 만큼 수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특히 요즘같이 내수 부진이 심화된 상황에서 수출 호조는 더더욱 한국경제에 버팀목이 된다. 다만 여전히 △수출의 반도체 쏠림 △중국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중간재 수출 부진 △G2에 집중된 수출 구조 등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중심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수출史 = 지난해 반도체의 수출 기여도는 7.2%를 기록하며 전체 수출 증가율의 절반을 차지했다. 올 들어 7월까지 수출 기여도는 6.4%로 전체 수출 증가율(6.3%)을 웃돈다. 반면 가전제품과 무선통신기기, 평판디스플레이, 자동차 및 부품 등 상당수 주력품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감소하거나 보합 수준에 그쳤다.
다만 이러한 반도체 집중화 현상은 세계 산업구조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1990년 이후 한국 수출을 견인했던 품목은 세계 수출에서도 점유율이 급증했던 품목과 동일했다.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초반 휴대폰, 2000년 중반에서 2010년 초반까지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금융위기 직후 보급이 확대된 스마트폰, 2010년 초반부터 현재까지 반도체 수출이 이를 대변한다. 즉, 반도체 쏠림 현상은 한국 기업이 대외 수요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적응한 결과라는 의미다.
이번 반도체 수출 증가는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이 배경이 됐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 통신기기와 차화정은 약 10년 가까이 수출 증가를 견인했으며, 2010년부터 세계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음을 감안하면, 반도체 수요 둔화에 대한 걱정은 아직 이르다”라고 진단했다.
해외생산 확대로 인한 구조적 수출 감소 요인을 감안하면, 반도체를 제외한 여타 품목의 수출도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 하 연구원은 “13개 주력 수출품목을 4가지 카테고리(IT, 산업재, 소재, 해외공장이전)로 구분하면 해외공장이전에 포함된 품목(2014년부터 해외생산을 늘린 무선통신기기, 가전제품, 자동차, 자동차부품)을 제외한 모든 품목에서 수출물량 증가가 목도된다”라고 분석했다.
◇중간재 대중국 수출 부진·G2 집중 수출 구조 우려는 ‘기우’ = 중간재 수출 비중 확대는 중국의 부상과 연계된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비중은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70~80%를 유지했다. 즉,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며, 중국은 이를 재가공해 세계에 수출하는 분업화가 갖춰졌다.
하지만 이러한 분업화 구조는 금융위기 직후 약화됐다. 2000년대 중반 80% 내외에서 유지되던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간재 비중은 금융위기 직후 70%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는 △중국의 공급과잉 심화로 인한 중간재 수요 약화 △정부의 중간재 국산화 및 가공무역 수출 제한 조치에 따른 부정적 파급 효과다.
다행히 2017년부터 중국의 설비가동률은 반등하기 시작했다. 2016년 국무원이 13차 5개년 계획 원년을 맞아 공급측 개혁을 강도 높게 진행한 결과다. 올해에도 대부분 산업의 설비가동률이 개선됐다.특히 비철과 기계, 철강 등 만성적인 공급과잉에 시달렸던 산업 중심으로 가동률이 올라왔다.반도체 등 IT 부품에 이어 한국의 주요 중간재 수출이 집중된 산업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G2에 대한 수출 비중이 큰 점도 둔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우려 사항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수출에서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4.8%, 12.0%로 합산하면 36.8%에 달한다.
하지만 향후 한국 수출은 G2 간 교역 악화에 따른 간접적 파장보다는 양국의 내수 경기에 직접적으로 연동될 공산이 크다. 2014년 기준 산업연관표에 근거한 한국은행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간재 중 64%가 중국에서 소비되는 최종재 생산 과정에 투입된다. 반면 중국에서 가공돼 최종재로 수출되는 비중은 36%이며, 이 중 7%가 미국으로 흘러간다. 이는 중국 민간투자와 밀접하게 움직이는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흐름을 통해 알 수 있다. 2011년 9월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중국 투자는 부진했다. 한국 대중국 중간재 수출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세가 둔화돼 2015년에는 감소 전환됐다. 2016년 9월부터 중국 투자가 본격적으로 반등하자 한국 대중국 중간재 수출 역시 급등하며 현재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간다.
반면,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과 중국의 대미국 소비재 수출은 뚜렷한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현재 수출구조에 따른 내재적 취약성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는 의미다. 세계경제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기관의 시스템 리스크가 목도되지 않는 한 수출 호조세는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개월 연속 수출 호조세 지속돼 ‘안도의 한숨’ = 올 들어 △제조업 구조조정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시간 등 친노동 정책에 따른 고용시장 부진이 내국인의 소비 여력을 제한하고 있다. 올 초만 해도 전년 동월 대비 약 8%의 증가세를 보였던 소매판매는 반 년 만에 4%대로 주저앉았다. 이와 함께 중국의 사드 규제 완화가 더디게 이뤄지면서 비거주자 국내소비 회복세도 정체다.
다행히 이 같은 불안한 대외 여건에도 한국 수출 호조세가 계속되고 있어 다소 숨통이 트인다. G2 간 무역 분쟁, 유럽발 정치 잡음, 신흥국 금융 불안 등에도 7월 수출 성적은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지난해 대규모 선박 인도에 따른 기저효과를 제외하면 17.5% 늘어 3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갔다. 8월에도 수출액 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8.7%의 증가율을 기록, 일평균으로도 동일한 상승률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올 들어 8월까지 누적수출은 전년 대비 6.6%의 증가율을 보였다.
다만 9월과 10월 수출 실적은 쇼크와서프라이즈가 연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9월에는 수출 증감률이 (-)를 기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으로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는 최대 (-)20%를 하회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반면 10월의 증가율은 월말 효과, 추석 직전 출고 반영 등을 감안하면 지난해보다 30% 상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