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용 전 수석연구관 문서 파기…"증거인멸 용인"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 농단' 수사를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법원이 전ㆍ현직 판사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잇따라 기각하던 사이 핵심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했다며 검찰은 극도의 흥분 상태다.
11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인 유해용(52) 변호사가 지난 6일 자신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두 번째 기각되자 퇴직 시 들고 나간 기밀 문건을 전부 파기했다.
검찰은 지난 6월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법원의 잇단 압수수색영장 기각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유 변호사가 다른 상고심 사건에 대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와 판결문 초고를 가지고 나온 사실을 파악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불허했고, 7일 다시 청구한 영장은 4일 만인 이날 기각했다.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기다리던 사이 유 변호사는 해당 문서들을 파쇄하고, 컴퓨터 저장장치도 파괴했다.
검찰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며 크게 반발했다. 검찰은 전날 밤 이례적으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명의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할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검찰은 유 변호사의 문서파쇄 사실이 확인되자 압수수색영장을 11일 다시 청구해 발부받아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검찰은 핵심 증거자료들이 이미 사라진 만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이번 사태에 대해 별도의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유 변호사의 문서 파기 사실을 검찰에 알린 것이 법원행정처였다며 관여 의혹을 부인했다. 법원행정처가 자료를 회수하기 위해 유 변호사와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문서 파기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먼저 검찰에 알렸다는 것이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가 속도를 낼수록 검찰과 법원의 충돌은 거세질 전망이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새로운 정황들 계속 찾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3년 전 법원행정처 간부가 재경 법원 재판부의 위헌심판제청 결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한 사실을 확인했다. 재판부는 이미 결정 사실이 통보된 상황에서 법원행정처의 연락을 받고 직권으로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