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법무법인 화우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용해(51) 변호사는 법조계에서는 신입이지만 미디어 분야에서만큼은 자타공인 베테랑이다. 이 변호사는 SBS PD, 콘텐츠 제작사 대표 등 미디어업계에만 25년을 몸담았다. ‘좋은친구들’, ‘이홍렬쇼’, ‘LA아리랑’ 등 예능 화제작을 연출했고, ‘올인’, ‘주몽’ 등 인기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랬던 그가 51살의 나이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법무법인 화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로스쿨에 입학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힘들었다”고 말했다. 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그였기에 법이라는 분야는 너무나 생소했다. “공부에 대한 갈망이 큰 상황에서 석사 학위도 따고, 변호사도 될 수 있어서 로스쿨을 택했어요. 법을 처음 접해서 힘들더라고요.”
재미도 느꼈다. 미디어산업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디어 분야에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다”며 “법을 공부하니 미디어 종사자들의 고민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제작 경험 살려 지식재산권 보호에 힘쓰고파”
이 변호사는 지식재산권(IP)을 보호하고 확보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방송사, 제작사는 물론 SM·YG엔터테인먼트 등 연예기획사 등도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미디어업계에선 최근 지식재산권 확보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 변호사는 “과거 제작사들은 방송사에 드라마 저작권을 팔고, 제작 수입을 남기는 방식으로 사업을 했다”며 “요새는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지식재산권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콘텐츠를 보급하고 지식재산권 확보에 어려움이 없도록 자문해주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이른바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활성화된 지 오래다. OTT란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영화·교육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과거엔 TV로만 영상 시청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유튜브, 네이버 V앱, 넷플릭스, 옥수수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소비한다. 이들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 콘텐츠는 곧바로 전 세계에 퍼져나간다.
때문에 기존 제작·유통 방식을 고수해서는 승산이 없다. 이 변호사는 “전통적인 시장에서 벗어나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며 “지식재산권을 만드는, 즉 콘텐츠를 고안하는 첫 단계부터 법률가들이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법적 분쟁을 떠나 콘텐츠 제작부터 유통, 수익 창출에 이르기까지 변호인들의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중국의 방송 표절, 소송만이 능사 아냐
25년의 미디어업계 경험은 법조인의 길을 걷는 그에게 자양분이 됐다. 이 변호사는 누구보다 업계 심리를 잘 이해하고 진단한다고 자부한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의 표절 분쟁이다. 중국의 국내 방송 프로그램 표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국 최대 위성방송사인 후난TV가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tvN ‘윤식당’과 ‘판타스틱 듀오’, JTBC ‘효리네 민박’, Mnet ‘쇼미더머니’ 등 국내 인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유사 형태로 방영됐다. 그럼에도 중국 방송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강경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변호사는 “중국이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소송을 하게 되면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잃어 오히려 손해가 더 클 수 있다”며 “표절을 못 하게 하는 것과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가는 것 중에서 가치 판단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을 하면 이길 수 있기에 보통의 변호사들은 소송을 권유한다”면서도 “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소송을 걸면 오히려 더 많은 걸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표절 분쟁은 단순히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 변호사의 지적이다. 중국은 중요 구매자인 만큼 때로는 소송 대신 저작권을 사도록 합의 하는 것이 이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윈윈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를 잘 따져야 하는데 변호사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며 “관련 업계에 오래 몸담았던 만큼 소송의 모든 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국의 방송 표절 문제는 비즈니스와 결부돼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주로 프로그램을 수입하는 중국이 수출국 입장이 되면 표절을 자제할 거란 기대를 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희망적인 기대에 불과하다.
◇ 포맷 보호, 법조인들 관심 필요
이 변호사는 프로그램 표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서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프로그램 포맷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 변호사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저작권으로 인정해주지만 방송되기 이전도 중요하다”며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단계에서부터 저작권이 보호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방송 포맷에 관심이 많은데, 구체화된 아이디어 표현을 저작권으로 보호를 해주면 포맷 거래가 더 활발히 일어나지 않겠냐”며 미국 폭스TV에 수출된 MBC ‘복면가왕’을 예시로 들었다. ‘복면가왕’은 중국을 포함해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이탈리아, 인도 등에 포맷이 수출된 데 이어 세계 최대 포맷 시장인 미국에도 진출했다. 전세계적으로 ‘포맷 거래’가 활성화 돼 있는 만큼 아이디어의 구체적인 표현인 방송 포맷이 저작권으로 인정되면 거래량도 늘어나고, 외국에서 표절을 하는 등 권리를 침해해도 보호해주기 용이하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의견이다.
실례로, 네덜란드에서는 방송 전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단계에서도 저작권을 일부 인정하고 보호해준다. 네덜란드 법원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서바이버(Survivor)>의 제작진이 만든 제안서를 저작물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법적 보호는커녕 관련 판례도 없다시피 하다. 이 변호사는 “포맷이 보호되려면 이와 관련된 소송이 활발하게 일어나 판례가 쌓여야 한다”며 “그만큼 법조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화우 내 문화콘텐츠팀에 합류해 포맷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나 최근 화우는 문화콘텐츠팀을 필두로 한국포맷산업협의회(KFA)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방송 포맷 산업의 발전과 포맷 지식재산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이 변호사는 해당 협약을 통해 다양한 포맷 사례를 연구하고 법률 자문을 하는 등 포맷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그는 “미디어업계 전문가로 온 만큼 그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른 변호사들과 협업하면서 방송 포맷과 콘텐츠를 보호하겠다”며 “장기적으로 미디어 산업과 미디어 기업들이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이용해 변호사는
1990년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해 10년 간 SBS 제작본부 PD로 일했다. 2003년 초록뱀미디어 제작본부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0년에는 메이콘텐츠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2015년 전남대 로스쿨에 입학한 뒤 지난 4월 제7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고, 최근 법무법인 화우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