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 정책에 들러리만 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경제인 방북단에 주요 그룹 총수 등이 포함되면서 남북경협이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는 반면, 일각에선 대기업이 정부 들러리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실적으로 당장 구체적인 대북 투자 문제를 논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제사회 제재로 인해 북한에 대한 투자는 사실상 막혀 있고, 남북 간 합의가 있더라도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대기업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고 외국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북미 관계가 경색될 경우 사업상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공정위 규제 등 재계 압박수위를 높여가면서도, 이 같은 국가적 이벤트에는 대기업 총수를 불러 구색 맞추기에 나선다는 점에서 두 얼굴의 정부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처럼 재계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지만 정부는 이번 방북단 수행원을 구성하면서 대규모 남북 경제협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4대 그룹 총수의 방북은 북한이 실질적 대북 투자 결정권을 쥔 대기업 총수들의 방북을 강하게 희망했고, 정부도 이를 거들면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삼성그룹 총수로는 첫 방북이다. 앞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윤종용 부회장이 평양에 갔다. 삼성전자는 과거 평양에서 TV를 생산한 적이 있다. 2007년 방북길에 올랐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현재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다. 북한의 통신·건설 인프라가 열악해 장차 SK텔레콤과 SK건설의 사업 참여 가능성이 나온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세대교체 후 처음 갖는 외부 공개행사가 방북길이 됐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현 회장은 지난달 남편인 고(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추모 행사 참석 차, 금강산을 방문한 지 한 달 여만에 다시 방북에 나선 것으로 당시 현 회장은 김영철 아태위원장 등 북측 인사와 티타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하며 경협 사업을 위한 발판 다지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경협 사업 재개 시 가장 발 빠르게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현대그룹은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과 전력과 통신, 철도, 통천 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수자원, 명승지관광사업 등 7개의 기간사업 관련 사업권(30년)도 보유하고 있다. 현 회장은 이와 관련해 “남과 북이 합심해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 현대그룹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