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르탄 판매 중지에 손해 수백억인데 식약처 ‘안전성 입증’ 요구에 부담 가중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사르탄 사태’를 계기로 의약품 품질 관리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미 수백억 원대 매출 손실을 입은 제약사들의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는 최근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 일부개정고시(안)를 행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약사가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시 원료의약품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시약, 출발물질, 중간생성물질 등의 안전성 입증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또한 유전독성이나 발암물질의 경우 발암확률 10만분의 1 수준 이하로 관리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의약품에 잔류하거나 혼입될 수 있는 납, 카드뮴, 비소, 수은 등 금속 불순물 역시 제조공정을 고려해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고혈압치료제 원료 의약품 발사르탄에서 비의도적 혼입물질이자 발암가능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되면서 의약품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커진 데 따른 조치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의약 선진국에서는 의약품 허가 시 유전독성·발암성 유연물질(분해생성물 포함)에 대한 문헌조사, 컴퓨터 독성예측시험 등을 통한 안전성 입증 자료를 제출받고 있다는 것이 식약처의 설명이다.
식약처는 “유전독성·발암성 유연물질 및 금속 불순물로 인한 안전성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의약품 판매중지 및 회수·폐기 등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다”며 “국민이 더 안전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의 규제 대상자는 의약품 제조업체 634곳과 의약품 수입업체 693곳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당 업체들은 유전독성·발암성 유연물질 안전성 입증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한다. 금속 불순물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개별 중금속 분석 시험 자료 준비 비용도 필요하다.
식약처는 컴퓨터 독성 예측과 유전 독성 시험을 실시하기 위한 비용을 약 129억 원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허가된 완제 화학의약품 수를 기준으로 추산한 금액이다. 금속 불순물 안전성 입증 시험 비용은 23억 원 규모로 내다봤다.
제약업계는 문제가 된 발사르탄 의약품이 판매 중지되면서 약 500억 원대의 매출 손실을 봤다. 식약처에 따르면 판매중지 및 회수된 115개 품목의 생산액은 지난해 467억 원, 2016년 406억 원 규모였다. 여기에 100억 원을 훌쩍 넘기는 의약품 품질관리 비용이 더해지면서 업체들의 부담은 날이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규제 강화의 목적은 이해하지만 사회적 비용을 모두 업계에 떠넘기려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며 “의약 선진국처럼 우리 정부도 의약품 허가 시 유해물질의 기준을 미리 정해주는 조치가 신속히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