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놓고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속으로 한·미 간 금리 격차가 0.75%포인트까지 벌어져 금융시장의 불안 우려가 커진 데다, 집값 급등세가 멈추지 않자 정부 쪽에서 금리 인상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까닭이다. 금리 인상 여부는 1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유동성 정상화가 부동산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며 “금리에 대한 전향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에 금리 인상을 촉구한 발언이다. 얼마 전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금리 인상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통화정책과 무관한 이들이 금리를 언급하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한은 금리 결정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로 논란이 증폭되는 것은 당연하다. 수도 없는 대책을 쏟아냈지만 집값이 잡히지 않는 큰 요인이 장기 저금리가 빚어낸 유동성 과잉인 것도 틀림없다. 정부가 답답해 하는 게 이해되는 이유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주열 한은 총재는 4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금융 불균형이 누증되고 있다”고 밝혔다. 저금리에 따른 가계 부채 증가, 부동산시장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등의 부작용을 지적한 것으로, 금리 인상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금리를 올리기에는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금리는 성장·생산·소비·투자·물가·고용 등 경제 전반의 거시변수를 모두 살펴 결정돼야 한다. 이들 지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금리 인상과 거꾸로다. 올해 한국 성장률은 당초 목표 3%에서 2%대 후반도 달성하기 어려워졌고, 투자 감소가 장기화하면서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예고하고 있다. 9월 취업자수 증가폭은 마이너스가 기정사실화됐을 만큼 최악의 ‘고용 절벽’ 상태다.
집값 안정도 중요하지만, 거시경제와 금융 안정을 통한 경기 부양과 성장력 제고가 금리정책의 최대 목표다. 부동산시장만을 보고 금리를 운용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정치 논리가 개입해 정부나 정치권이 이래라 저래라 금리정책에 섣불리 개입하는 것은 더욱 안 될 말이다.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한·미 간에 역전된 금리 격차 확대, 시한폭탄 같은 가계 부채 부담 증가 등으로 한은이 금리 인상을 실기(失期)했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과 중립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자칫 치솟는 집값에만 매달려 금리 운용이 왜곡되면 경제를 더 엉망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