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미국 수준의 한국 중증환자 치료
독자들은 제각각의 방식과 관점으로 책을 읽는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중증외상 분야가 어떤 것인지, 한국은 어느 수준인지, 그곳에서 일하는 외과의사를 비롯한 의료팀은 어떤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단순한 기록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한 외과의사의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단문 형식의 문장력 덕에 독자들은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중작업 도중 굵은 동아줄이 그의 몸통을 강하게 휘감고 말았으며, 두껍고 단단한 줄은 순식간에 그의 몸을 감고 돌아 뼈와 내장을 부수었다.” 이 문장을 대하는 독자라면 중증외상 분야가 어떤 환자를 치유하는 것인가를 쉽게 그릴 수 있다. 저자에 대한 예의는 일단 중증외과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외상이 ‘몸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에 의해 손상된 모든 것’을 뜻한다면, 중증외상은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외상으로 반드시 수술적 치료 및 집중치료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이런 환자들은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신속한 방법, 예컨대 헬리콥터 수송 등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의료기관에 도착해야 한다. 도착과 동시에 가장 빠른 진단, 수술, 집중치료가 이뤄지려면 외과, 마취과, 혈액은행 등과의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당장 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상당한 자원이 투입돼야 함을 알 수 있다.
외관상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사회지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허술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라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라도 한국에서는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선진국의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대부분 15% 이하이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는 한 자릿수로 낮춘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한국은 2008년 기준 32.6%로 높다. 이는 규모를 갖춘 중증외상센터의 부재에도 원인이 있지만 한국 의료 시스템의 부실함에도 원인이 있다. 예를 들어 중증외상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기관까지 이송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이다. 현재 한국의 환자 이송 시간은 4시간이다. 이는 미국을 기준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수준이다. 미군의 경우엔 한국전쟁 당시에 1시간 30분, 베트남 전쟁 때는 30분까지 단축시켰다. 중증환자의 치료에 관한 한 한국 수준은 1940년대 미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몸에서 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을 쏟아내면 환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는데,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에는 앰뷸런스 안에서도 오래 견뎌낼 수 없다. 결과적으로 환자 이송 단계부터 시작해서 치료까지 시스템의 완비가 매우 중요하다.
책에서는 관료화한 공공의료 분야가 어떻게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 적은 돈을 나눠 이곳저곳에 소규모 중증센터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면 대규모 중증센터를 수도권에 만들고, 이송 시간을 단축하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면 더 나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따금 색다른 분야의 글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