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이 글에는 주택공급 포화론자들의 뼈를 때리는 통계 폭력이 포함돼 있으며 무주택자 뒷목 잡을 숫자가 속살을 드러내니 임산부와 노약자, 아파트 값 폭락을 기대하는 소시민에게는 유주택자의 구독지도가 필요합니다.
숫자로 본 대한민국은 의·식·주가 넘쳐나는 낙원이다. 쌀은 자급률이 치솟다 못해 남아돌아 골칫거리고, 주택보급률도 100%를 넘어섰다. 사고 또 사도 입을 것이 없다는 패션피플 옷 문제는 SPA가 분투중이다.
그런데 ‘먹고’ ‘살’ 걱정 없는 곳에 철마다 감자파동·배추대란이 날뛰고, 잊힐까 서운하면 집값 대환장파티가 주기설과 함께 찾아오니 왜 때문인가.
우선 먹는 것 잠깐 보자.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사료용까지 포함해도 23% 정도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가운데 32위다. 그나마도 넘쳐나는 쌀이 끌어올린 숫자일 뿐 옥수수는 3%, 밀은 1%에 불과하다. 채소와 과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식료품 값 치솟게 만드는 유통 마피아의 농간(그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이 통하는 것은 공급 부족이 멍석을 깔아주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이 턱없이 모자라 몇몇 농업국이 짬짜미하면 당장 끼니마저 끊길 판이지만, 우리는 자급률 100% 쌀 풍년이 마뜩잖은 팔자 좋은 시절로 알 뿐이다.
사는 곳은 어떤가.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택보급률(2016년 기준)은 102.6%, 서울은 96.3%다. 헬조선은 커녕 1가구 1주택을 달성한 복지국가이며 수도 서울은 극소수 노숙자를 빼면 모두가 홈스위트홈의 꿈을 이룬 부자도시다.
‘주택수/가구수 X 100’의 초등산수로 계산하는 주택보급률에는 두 번의 충격 반전이 숨어있다. 먼저 공급부족 논란을 동문서답 무한반복 뫼비우스의 띠로 만들어버린 말장난의 근거를 제공한다. 집을 더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국토부는 ‘주택’보급률을 꺼내며 “공급은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아파트’가 부족하다는데 ‘주택’이 충분하다는 기적의 논리다.
뇌세포 오작동 노린 유사용어를 쓰며 옆길로 새는 걸 보니 구린내가 난다. 포털에서 주택보급률을 검색해보면 용어사전부터 지식백과, 관련기사까지 오조오억개의 결과가 쏟아진다. 그럼 아파트보급률은? 그런 용어가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하다.
주택보급률의 공식에서 주택만 아파트로 바꿔 ‘아파트수/가구수 X 100’으로 계산해 봤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는 총 164만1383 채, 외국인을 제외한 서울의 일반 가구수는 364만4101 가구. 나누고 곱하면 45.0%가 나온다. ‘주택’보급률 96.3%라는데 저 많은 ‘아파트’ 중에 왜 내 것만 없는지 알려주는 힌트다.
‘주택’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농간이 숨어있다. 주택보급률을 집계할 때 쓰는 주택 수는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한 통계를 사용하는데, 아파트외에도 단독주택(영업겸용주택 포함),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 비거주용건물내주택을 더한 숫자다.
사기극의 서막은 단독주택에서 시작된다. 정부가 주택보급률을 발표할 때 단독주택이라는 단어 옆에 굳이 ‘(영업겸용주택 포함)’이라며 친절한 척 숨겨둔 이유는 뭘까. 통계표준용어는 “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건축된 일반 단독주택과 여러 가구가 살 수 있도록 설계된 다가구 단독주택”이라 정의한다.
이 것만 봐서는 무심코 지나칠 법한 진실들은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한 통계청이 얼떨결에 폭로해뒀다. 예컨대 최신판인 2015년 조사에 따르면 20세 미만 1인가구는 ‘단독주택’ 거주비율이 71.7%로 다른 형태의 주택을 압도한다. 이유는 “이들이 주로 ‘원룸’에 살고 있어서”다. 이게 무슨 소릴까? 통계청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원룸’을 ‘단독주택’으로 분류했고, 이 원룸들이 주택보급률을 계산할 때도 ‘단독주택’으로 둔갑해 주택수에 포함된다는 뜻이다.어느 유명 작가에 따르면 “쉬운 말두고 어려운 단어를 쓰는 이는 사기 치려는 사람”이란다. 설마 반지하나 옥탑방도 ‘단독주택’에 포함된 건 아닌지 궁금하다면 상상에 맡긴다.
‘비거주용건물내주택’이라는 알쏭달쏭한 단어에도 비밀이 묻어있다. 고층 빌딩이라도 청소원이 잠시 쉬는 쪽방에 코딱지만한 부엌만 있으면 주택이 보급된 걸로 친다. 방1, 부엌1, 독립된 출입구만 있으면 ‘주택’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피스텔에다 여관과 고시원, 비닐하우스까지 다 집어넣은 ‘주택이외의 거처’를 주택보급률에서는 제외한 것을 보니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세금 낼 땐 오피스텔을 주택으로 쳐서 돈 걷어간다는 건 함정)
서울을 온통 아파트로 뒤덮을 수는 없는 노릇. 공급부족을 핑계로 투기와 담합을 내버려 둘 수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1000만 거대 도시에 주민 다수가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는 164만 채 뿐이라는 진실을 가린 채 쪽방까지 슬쩍 섞은 숫자를 보여주며 “집은 차고 넘치는데 네 몫은 누가 빼앗아 갔으니 분노하라” 이간질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