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용 금지·신규투자 옥죄기...이중 삼중 규제에 국내서 성장 한계
지난해 가상화폐(암호화폐·코인) 광풍 이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코인 거래소들이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국내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의 국내 거래소 이용을 전면 금지했으며, 투자금 입금을 위한 가상계좌 발급을 까다롭게 해 신규 투자를 옥죄고 있다. 일각에선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이 거래소를 중심으로 확대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에선 길 없다”… 빗썸, 싱가포르 기업에 매각 = 이달 1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은 최근 미국 핀테크기업인 시리즈원과 계약을 맺고 증권형 토큰 거래소 구축을 위한 투자와 기술 지원을 하기로 했다. 시리즈원은 내년 상반기 중 미국에 거래소를 설립할 계획이며, 빗썸은 관련 기술을 제공하고 거래소 사업을 담당한다.
빗썸이 미국 진출을 본격화한 것이지만, 속내는 편치 않다.
사실 빗썸은 지난해 3000억 원대 수익을 낸 후 꾸준히 상장설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거래소의 외국인 가입 금지와 신규 입금 가상계좌 발급 지연 등 사업 성장에 한계가 드러났다. 이후 비티씨코리아닷컴의 최대주주인 비티씨코리아홀딩스는 싱가포르 ‘BK 글로벌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현재 빗썸의 최대주주는 싱가포르 기업으로 글로벌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외 자회사인 BGEX가 홍콩에서 탈중앙화 거래소(DEX) ‘빗썸 덱스(DEX)’를 공식 오픈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후 시리즈원을 통해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시리즈원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크라우드펀딩 사업 인가를 받았으며, 대체거래소(ATS) 인가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선두권 거래소 해외로 = 지난해 10월 거래소 사업을 시작한 업비트(운영사 두나무)도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 신규 가입 가상입금계좌가 발급되지 않고, 외국인 거래가 차단된 상태에서 국내 투자자만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30일 업비트 싱가포르를 오픈하고 가상화폐 거래 서비스를 시작했다. 2월 ‘업비트 싱가포르’ 현지법인을 설립한 지 8개월 만이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9월 “국내 거래 환경이 좋아지기만 기다리면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어 해외 진출을 선택하게 됐다”며 “싱가포르 거래서비스가 국내와 세계 시장의 다리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와 함께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비트는 이미 태국과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사용할 도메인(인터넷주소)을 확보하고, 각 사이트에 현지 언어로 거래소를 소개하는 내용도 개시했다.
코인원은 몰타 소재의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인 CGEX(씨젝스)를 이달 초 오픈했다. CGEX는 법정화폐가 아닌 코인 간 거래 기반(C2C)의 가상화폐 거래소로, 운영 초반 BTC마켓을 지원한다.
◇해외 거래소들, 자유롭게 국내 이용자 공략 = 국내 거래소들이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는 사이, 해외 거래소들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스위스나 싱가포르, 몰타 등 가상화폐 산업 촉진에 적극적인 국가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거래소가 생겨나고 있다.
홍콩에 사무실을 둔 비트멕스는 파생상품만 거래하는 거래 서비스로 단시간에 거래량 순위 1~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몰타로 법인을 이전한 바이낸스는 올 초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국내 거래소 폐쇄’를 언급한 사건 이후 급격히 사용자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일어난 날 바이낸스 신규가입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나기도 했다.
국내 이용자가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것과 함께 해외 거래소들의 국내 시장 진출도 꾀하고 있다. 해외 대형 거래소들 대부분은 한국어를 지원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후오비(Houbi)와 오케이익스(OKEX)는 국내 영업 법인을 설립해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인 거래소 사업은 국경 없는 전쟁터인데 우리나라에선 외국인 거래 금지로 성장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해외 진출은 생존을 위해 필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