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정부·정치권의 지지부진한 규제개혁에 대해 또다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제 광주에서 열린 전국상의 회장단 회의에서다.
박 회장은 “정부에 규제개혁 리스트를 제출한 것만 39번”이라며, “경제 내리막 추세를 빨리 돌려세워야 하는데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업이든 소상공인이든 국가가 허락한 사업만 하라는 규제는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준까지 갔다”고도 말했다. 생명·안전의 필수 규제 말고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든 규제를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박 회장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없이 규제개혁을 호소해왔다. 일자리를 늘리는 건 규제혁파밖에 없는데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규제만 쏟아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57곳이 한국에서는 규제에 막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심한 규제 수준을 지적했다. 상의 회장단 회의는 규제를 성토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규제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는 기업들의 절박함이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수십 년 역대 정부는 한결같이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구호로만 그쳤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과거 영국의 ‘붉은 깃발 조례’를 예로 들고, 금지된 것 말고는 일단 허용한 뒤 사후에 규제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강조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근본적으로 친(親)노동·반(反)시장에 치우친 정책 기조와 재벌 개혁 논리가 규제를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과속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부터 기업의 성장력을 갉아먹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은 몇 년째 국회에 막혀 있고, 네거티브 규제를 골자로 하는 행정규제기본법도 진전이 없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오히려 기업을 옥죄고, 정부 간섭만 더 늘리는 입법에 나서고 있다. 경영권 보호장치는 전혀 없이 기업지배구조를 흔드는 상법 개정안, 대기업 경영 역량의 낭비만 초래할 가능성이 큰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규제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아니다. 정권 지지층과 이해집단의 반발에 밀리고, 또 규제를 없애는 데 앞장섰다가 나중에 적폐로 몰릴까 두려워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탓이 크다.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규제혁신 관련법과 4차 산업혁명 등 신산업 육성 지원법의 조속한 처리에 합의했다. 두고 볼 일이다. 서둘러 비상한 규제개혁 조치로 기업들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가라앉는 경제를 살릴 수도,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