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대다수 기업은 일본이 제재에 나선다고 해도 중국에 비해 교류 규모가 크지 않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효성 등 일본 업체들과 거래가 많은 기업들은 이번 판결로 인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효성의 경우 효성화학이 생산한 폴리프로필렌의 일본 수출 물량이 지난해보다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현지 화학사들이 자동차 내외장재 업체와 식품 포장 제조사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며 효성화학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 또 효성은 자체 개발한 원사가 적용된 자동차용 카페트를 일본 완성차업체 렉서스에도 공급하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가 관세나 정책을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바꿀 경우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효성을 포함한 여러 화학·소재업체들이 일본업체와 거래하거나 합작업체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판결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직 개별 기업 차원에선 큰 문제가 없지만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현지 여론이 악화될 경우 개별 기업들도 이를 무시할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국내에 진출한 70여 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자국 정부의 대응 방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지면서 민간 경제까지 판결의 영향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개별 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있는 건 없다”며 “개별 기업차원에서 문제가 생기기보다는 정부차원에서 관세라든지 정책이라든지 이런 게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자·반도체·자동차 업계는 이번 판결 영향에서 한발 빗겨난 모양새다. 가전의 경우 일본 시장이 현지 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은 상황이어서 다른 국가에 비해 일본에 수출하는 제품의 수가 적기 때문에 제재가 있더라도 영향을 크게 받기 어렵다. 또 반도체 업계는 장비부품에 대해 일본 등 다른나라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워낙 덩치가 큰 고객이다 보니 일본 정부가 무작정 무역 제재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관계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일본 장비 업체들에게 큰 고객”이라며 “장비수출 양을 제한하는 제재는 일본에게도 큰 타격이 된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 역시 일본과 직간접적인 교역이 없는 만큼, 사실상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초창기 일본 메이커와 기술협력을 통해 완성차를 개발했던 것과 달리 핵심기술의 대부분은 국산차 메이커가 자체 보유 중이다.일본에서 가져와야할 핵심 또는 주요부품도 없는 상태다. 조선업 역시 강력한 경쟁상대는 중국과 싱가포르 기업에 한정돼 있고, 철강업계는 경쟁구도를 갖췄으되 원재료 수급과 가공기술 등에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다.
다만 자동차 부품사의 경우 일부 수요산업에서 일본산 철강(특수강) 의존도가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관련업계는 일본 기업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준형 김유진 한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