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잔인했죠. 아이러니하게 덕구가 잔인하게 당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받았죠."
15일 오후 광주 남구 한 상가건물에서 네 다리에 화상을 입은 채 누워있는 강아지 '덕구'가 발견됐다. 네 다리 모두 피부가 까맣게 그을었고, 살갗이 벗겨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당시 덕구는 광주시 유기견 보호소로 옮겨져 안락사를 당할 뻔했다. 다행히 안락사가 이뤄지기 전, 비영리단체 '유기동물의 엄마아빠(유엄빠)'의 구조활동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덕구는 현재 서울 내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2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근처 카페에서 김명수 유엄빠 팀장을 만나 덕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유 팀장은 "덕구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전신마취도 하지 못했다"면서 "지금처럼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전신마취를 하면 영원히 깨지 못한다는 수의사님 말에 따라, 수술은 잠시 미루고 신경이 다 죽어버린 네 다리의 발가락 부분만 절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몸에 염증이 가득한 덕구는 최소 2달 동안은 입원하며 필요한 수술들을 받아야 한다.
덕구는 유엄빠 스텝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유 팀장은 "스텝들이 여러 가지 이름을 제안했는데, 촌스러운 이름이어야 오래 산다는 말이 나와 덕구로 하게 됐다"며 웃었다. 덕구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명이다. 그는 "덕구 성향이 너무 순하고 조용해서 덕구 스스로 다쳤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 "범인이 덕구를 들어서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에 담근 것 같은데, 염산이나 화학성분을 첨가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현재 경찰은 덕구가 버려져 있던 광주 남구 상가 인근의 CCTV를 분석 중이다.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학대범이 잡힌다고 해도 큰 실형을 받을 확률은 미미하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아닌, 죽음에 이르는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행법으로 동물 학대범에게 내려지는 최대 처벌은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최대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유 팀장은 처벌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물을 학대한다고 실형을 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면서 "사람을 죽여도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는 판에, 동물 학대범에게 강한 처벌이 내려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이어 "1000만 반려인 시대가 됐고 예전보다 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얼마나 짧은 시간 내에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만간 동물 학대범이 제대로 처벌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이번 덕구 사태를 접하며 국민청원도 생각하게 됐다. 덕구로 인해 높아진 유기견에 대한 관심을 법 제정으로 이어가려는 것이다. 유 팀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물학대 처벌 강화법을 청원할 예정"이라면서 "분명히 덕구 학대범도 미미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인데, 앞으로는 제2의 덕구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청원을 생각해낸 이유는 SNS로 네티즌이 보내주는 응원의 힘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덕구가 사태가 알려지고 보도된 것. 그리고 후원으로 이어진 모든 과정이 유엄빠 인스타그램 팔로워, 유엄빠 팬들 덕분입니다. 유엄빠를 응원해주는 힘이 덕구 사태가 보도되게 만들었고,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했죠. 국민청원 역시 덕구를 비롯한 수많은 유기견을 생각해주시는 분들의 동참으로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 5월에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유기견 보호소인 '한나네 보호소' 폐쇄를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20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고, 관련 부처의 답변까지 받았다. 환경부는 '한나네 보호소'를 동물을 판매하기 위하여 사육하는 '개 사육시설'이 아닌, 동물의 구조·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보호시설'로 규정해, 폐쇄 결정을 취소하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유 팀장 역시 청원 게시판을 통해 동물보호법을 강화하는 데에 국민의 힘을 모아볼 생각이다.
덕구의 안타까운 상황이 전해지면서 유엄빠 단체 역시 덩달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운영비는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유엄빠 단체 직원은 6명이고, 모두 무급으로 봉사한다. 각자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남는 시간을 모두 유기견 구조활동에 쏟는다. 덕구 사건이 알려지면서 후원금도 늘었지만, 덕구의 2달 입원비와 수술비를 제외하면 넉넉한 돈은 아니다. 설사 후원금이 남는다고 하더라도, 유엄빠 단체가 사적으로 사용하는 돈은 없다. 전국 보호소의 사료비로 기부하거나, 견사를 짓는 비용을 지출한다.
유 팀장은 현재 비영리 단체인 유엄빠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사단법인이 되면 직원 고용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현재 구조된 유기견들을 보호하고 있다가, 입양 희망자가 나타나면 그들에게 입양해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유엄빠가 최대 돌볼 수 있는 유기견은 30마리 정도다. 한 마리가 입양을 가면 그 자리에 유기견 한 마리를 더 구조해 올 수 있다. 그러다보니 구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빈번하다.
그는 "하루에 3건, 한 달에 100건 정도의 구조 요청이 들어오는데, 우리 스텝들이 돌볼 수 있는 유기견의 수가 한정돼 있어 유기견을 모두 구조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그래도 자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단체만큼 많은 곳을 열정적으로 돕고 있는 단체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유 팀장이 유엄빠를 만든 것은 2015년이다. 지인 4명과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를 갔다 온 뒤, 강아지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보호소에 갔다왔던 사연을 SNS에 올렸고, 원하는 사람에게 유기견 입양을 연결해 주다가 관련 단체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많지 않았다. 단체 이름도 알려지지 않아 동물병원을 연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유기견 치료에 도움을 주겠다고 직접 연락을 주는 동물병원도 생겼다.
한 해 9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유기된다. 이 중 30%가 분양을 통해 새 가족을 찾고, 25%는 자연사, 20%는 안락사를 당한다. 버려진 동물의 절반이 죽음을 맞이한다. 유 팀장의 새해 소원은 이렇게 많은 유기견이 좋은 가족에게 입양이 되는 것이다. 유기견 말고 본인과 관련된 새 해 목표를 말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안 아프고 건강해지는 것. 그래서 유기견 보호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는 것. 이게 새해의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