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스타와 전설은 무엇이 다른가. 스타가 시대를 읽는다면 전설은 시대를 이끈다. 스타는 말 그대로 별이어서 반짝 빛나다 꺼진다. 전설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불을 밝힌다. 스타는 한시적이고 전설은 영속적이다. 한마디로 지속 가능성에서 갈린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퀸의 전설’을 만든 협업 리더십 키워드 세 가지를 뽑아 보았다.
첫째, 정명(正名)이다. 정체성이다. 명색보다 명분을 갖추라. 퀸은 “우린 부적응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에요.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 우린 그들의 밴드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누구이고 고객이 누구인가, 무슨 일을 하는가. 퀸의 대체 불가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경영학자 사이먼 사이넥은 “리더란 우리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를 이해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명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명(名)은 명분이다. 정명은 좌표, 목표, 역할, 고객을 아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홈페이지 등을 살펴보면 명분이 아닌 명색에 그친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만 쓰는 전문용어, 뜬구름 잡는 개념어 일색이다. 회사 이름 가리면 비슷해서 구별조차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를 대상으로 삼고, 어떤 효용을 줄 수 있는가. “우린(나는) ○○○를(을) 위해 ○○하는 ○○이다. 우린 그들을 위해 ○○한다.” 정명의 선명도와 생존력은 비례한다.
둘째,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다양성이다. 동화보다 조화를 꾀하라. 시각은 다르되 시야는 같은 게 조화다. “내가 고용한 사람들은 정말 내가 시키는 대로만 했어. 너처럼 잘못된 걸 말해주지도 않았지. 난 너희들이 필요해. 내겐 너희가 필요하고 너희도 내가 필요해.” 자신의 스타성에 우쭐해 개인 밴드를 만들어 독립했다가 돌아온 프레디 머큐리가 멤버들에게 하는 말이다.
화이부동은 조화를 이루되, 무턱대고 따라하는 동화는 하지 않는다. 좋은 관계보다 완벽에 도전하도록 서로 자극한다. ‘이 정도면 괜찮아’에서 머무르고자 할 때 최고를 향하게 돕는다. 조화와 동화, 겉으론 비슷하다. 오히려 조화가 겉으론 더 불화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차이는 갈등의 수렴과정 여부다. 자신에게 불리해도 최종 결정에 승복하고, 외부의 공격 등 위기에 한마음으로 대응한다. 이기면 서로 축하하고, 패하면 죽기 살기로 서로 돕는 게 진정한 조화다. 동화는 반대다. 의사결정 시엔 말없다가 위기 시엔 당파성을 보인다. 최종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한가. 갈등의 투명한 수렴과정이 자생력의 원천이다.
셋째는 낭패(狼狽)다. 공정성이다. “팀은 망해서가 아니라 깨져서 끝나.”, “가족은 싸우지만 헤어지진 않잖아.” 프레디 머큐리의 말은 모든 조직에 두루 적용된다. 외부 위기보다 내부 균열이 더 위험하다. 낭(狼)은 앞다리가 짧고, 패(狽)는 뒷다리가 짧은 이리다. 낭의 추진력과 패의 관리력이 어우러져 낭패는 전진한다. 둘이 나란히 걷다가 사이가 벌어져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이 어긋나는 것을 낭패라 부르게 된 유래다.
화이부동이 의사결정의 공정함이라면 낭패는 분배의 합리성이다. 영화에서 퀸은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발병 후 ‘모든 곡을 개인 멤버의 이름이 아닌 퀸의 작품으로 내고, 수익을 n분의 1로 배분하기’로 합의한다. 이들은 이때를 ‘퀸의 가장 친밀한 시기’로 추억한다. 기여도에 따른 평형의 공평함인가. 멤버 수로 나눈 평균의 공정함인가. 낭과 패처럼 상호 의존도가 높은가 아닌가에서 그 비율은 조정될 수 있다.
단 오래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밴드 퀸이 아니라 다른 여타 분야에서도 하이 퍼포머가 이동, 다른 멤버들과 구성됐을 때 원래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이 퍼포머에 치중한 과도한 절벽식 배분은 피한 것, 반짝 스타로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한 전설적 팀의 공통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