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와 B 씨는 2004년께부터 사실혼 관계였다. B 씨는 2016년경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B 씨는 A 씨에게,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소유한 차량 2대를 팔아 생활비로 써라”고 말했다. B 씨는 차량 매매상인 C 씨에게 연락해, 차량들을 팔아 매매대금을 A 씨에게 주라고 하였다. C 씨는 B 씨의 요청대로 차량을 판 돈 4200만 원을 A 씨 계좌에 송금했다. A 씨는 B 씨가 사망한 후 이 돈을 생활비로 썼다. B 씨의 딸은 “이 돈은 B 씨가 남긴 상속재산이어서 상속인인 자신이 받아야 하는데 A 씨가 이 돈을 횡령했다”며 그를 고소했다.
1심은 A 씨가 이 돈을 횡령할 생각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은 이 돈은 B 씨의 상속인에게 상속되므로, A 씨가 이 돈을 쓴 것은 횡령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B 씨가 이 돈을 A 씨에게 증여했으므로 A 씨가 이 돈을 썼다고 해도 횡령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사건들을 살펴보면, 상속인 중 한 명이 상속재산인 부동산 전체를 다른 상속인들 동의 없이 매도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상속인 중 한 명이 다른 상속인들 상속지분에 관한 이전등기까지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상속인들 지분까지 실제로 처분할 수는 없고, 따라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사건으로, 상속재산으로 거액의 채권이 있었는데, 상속인 중 한 명이 다른 상속인들 몫인 채권까지 전부 변제받아 돈을 가지고 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돈을 전부 가지고 간 상속인에게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상속인 중 일부가 다른 상속인들이 받아야 할 상속재산까지 가지고 가거나, 상속인도 아닌 사람이 상속재산을 가지고 간 경우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횡령죄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형법 규정상 대법원이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상속재산을 가지고 간 사람이 문서를 위조했거나 거짓말을 했다면 문서위조죄, 사기죄 같은 죄로 처벌할 가능성은 있다. 상속재산을 처분해서 돈을 나누기로 했는데 돈을 나눠 주지 않는 경우 횡령죄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것이므로, 상속재산을 빼돌렸을 때 항상 이런 죄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속재산을 빼돌린 사람을 처벌하기 쉽지 않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빼돌린 상속재산을 되찾아 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상속재산을 빼돌린 사람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거나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해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민법은 상속재산을 다른 사람이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혹은 상속재산을 빼돌린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상속재산을 찾아올 수 없게 정해뒀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려면 서둘러 해야 한다.
혹시 상속인이나 다른 사람이 상속재산을 빼돌릴 기미가 보이는 상황이라면, 상속재산분할을 하기 전이라도 상속재산에 가압류나 가처분 같은 것을 해 두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