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잔한 실험실] '카스·하이트·아사히·칭따오'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네가 진짜 구분할 수 있다고?

입력 2018-12-14 13:27수정 2018-12-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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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튀김은 어느 패스트푸드점에서 먹는 게 가성비가 가장 좋을까? 어떤 에너지 드링크를 먹어야 같은 값에 더 많은 카페인을 섭취할 수 있을까? 일상 속에서 한 번쯤 궁금해했지만, 너무 쪼잔해 보여서 실제로 실험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다지 해보고 싶지 않은 비교들. [쪼잔한 실험실]은 바로 이런 의문을 직접 확인해 보는 코너다. cogito@etoday.co.kr로 많은 궁금증 제보 환영.

▲국산 맥주가 수입 맥주에 비해 그렇게 맛없다는데, 정말 그럴까? 본지 기자 30여 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해봤다. 이름하여 '대방의 심판'. (김정웅 기자 cogito@)

‘파리의 심판’이란 게 있다. 옛날엔 프랑스 하면 와인, 와인 하면 프랑스였다. 이에 미국 와이너리들이 “우리도 와인 잘 만드는데…쒸익쒸익”하며 1976년, 파리에서 프랑스 와인과 블라인드 테스트로 벌인 진검승부를 말한다. 테스트 결과 프랑스 와인은 화이트와 레드와인 모두 미국에 1위를 빼앗기며 완패했다.

그 왜 2차로 호프집에 가면 꼭 이런 사람들 있다. “우리나라 맥주는 영 밍밍해서…맛이 이게 뭐야. 꼭 오줌 맛 같기도 하고.” 대체 어떤 경위로 오줌 맛을 보았기에 이런 평가가 가능한 건지 참 궁금하지만, 이는 우선 제쳐두기로 하자.

어디선가 “우리 맥주 오줌 아닌데…쒸익쒸익”하고 있을 국산 맥주업체들을 떠올리며 또 하나의 진검승부를 구상했다. 과연 사람들은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를 분간할 수 있을까?

블라인드 테스트에 사용할 맥주로는 한 편의점 프랜차이즈 매출액 기준 1, 2위를 차지한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인 '카스', '하이트''아사히', '칭따오'를 선택했다. 테스터들이 마실 맥주는 점심시간을 틈타 회사 옆 편의점에서 한아름 사왔다.

블라인드 테스트에는 “내가 살면서 먹다 흘린 맥주가 너희 집 욕조를 가득 채울 것”이라고 자부하는 본지 기자들 30여 명이 참가했다. 여의도 한복판에 책상을 펴고 진행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닥친 영하 10도 날씨에 행인들에게 차디찬 맥주를 내밀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실험은 두 파트로 나눠 진행했다. 첫 번째는 카스와 아사히(모 편의점 발표 기준ㆍ국산과 수입맥주 각 1위)를 대표선수로 내세워,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를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다음날 실시한 두 번째 실험은 좀 더 욕심을 냈다. 종이컵에 따라진 카스, 하이트, 아사히, 칭따오 4종을 시음하고 각각의 브랜드가 무엇인지 적도록 했다.

모든 음료는 용기나 잔의 재질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캔맥주를 종이컵에 따라놓고 하는 테스트가 다소 정밀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 겸허히 수용한다. 하지만 세간의 일부 인식처럼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간에 ‘오줌과 맥주’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테스트의 조악함을 뛰어넘어 맛과 풍미에서 극명한 차이가 드러날 것으로 믿기에 실험을 진행했다.

이걸 ‘파리의 심판’에 빗대 ‘서울의 심판’…이라고까지 말하긴 너무 거창하다. 이투데이의 기자들이 참여했으니까, 이투데이 사옥이 위치한 지역적 정체성이 담긴 대방동의 이름을 따 ‘대방의 심판’ 정도로 불러 본다. ‘대방의 심판’,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30여 명의 기자에게 국산과 수입맥주를 맞춰 보게 했다. 과연 결과는? (김정웅 기자 cogito@)

◇파트1.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분간할 수 있을까?

'카스’와 ‘아사히’ 두 제품을 마신 뒤 어떤 것이 수입 맥주이고 어떤 것이 국산 맥주인지 가려보도록 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종이컵에는 수입 맥주인 아사히를, 파란색으로 표시한 종이컵에는 국산 맥주인 카스를 담았다.

실험의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달랐다. 참가자 중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를 정확히 구분한 사람은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아사히’가 수입 맥주이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카스’가 국산 맥주라는 정답을 맞춘 사람은 참가자 28명 중 16명. 57.14%였다.

이 실험은 OX퀴즈와 같은 이지선다 문제다. 피실험자가 낼 수 있는 답이 ‘수입-국산’ 아니면 ‘국산-수입’ 뿐이기 때문이다. 찍어도 정답률이 50%다. 이런 실험의 정답률이 57.14%라는 것은 '사실상 국산과 수입 맥주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의 대표선수가 분간이 안 가다니.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대해 “훼이크로 양쪽에 똑같은 걸 따라둔 게 아니냐”, “김이 빠져서 그렇다” 등 실험 참가자들의 원성이 폭발했다. 결과에 불복하고 재실험을 요구하는 기자들을 위해 좀 더 난이도를 높여 2차 실험을 준비했다.

▲1차 실험 결과에 불복한 18명의 기자들이 재도전을 신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답자는 단 1명! (김정웅 기자 cogito@)

◇파트2. 카스, 하이트, 아사히, 칭따오…상표 가리면 브랜드 맞출 수 있을까?

재실험을 요구한 18명을 대상으로 국산 맥주 판매량 1, 2위인 카스와 하이트, 수입 맥주 판매량 1, 2위인 아사히, 칭따오를 맛보고 각각의 브랜드를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결론부터. 4개 맥주를 모두 구분해낸 참가자는 단 1명. 비율로는 5.5%에 불과했다. 2개의 맥주를 맞춘 사람은 7명(38.89%), 1개의 맥주를 맞춘 사람도 역시 7명(38.89%)이었다. 단 한 개도 못 맞춘 '똥입'도 3명(16.67%)이나 됐다.

각각의 브랜드를 모두 정확히 맞춘 영광의 주인공인 H모 부장은 “맛있다고 생각하는 맥주의 순서를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맛본 뒤, 맛있었던 순서대로 적었더니 다 맞힐 수 있었다”라며 기뻐했다.

이 실험을 찍어서 맞출 확률은 전체 24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를 고를 확률, 즉 4.16%(24분의 1)이다. H 부장의 흥을 깨려는 것은 아니지만 실험 참가자가 18명이었으므로, 4.16%의 확률인 어떤 실험이 18명의 참가자가 모두 정답을 ‘찍었을’ 때 정답자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정답자가 나올 확률은 53.51%(1-(23/24)의 18승)이다. 18명 중 한 명의 정답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H 부장의 미각 수준과는 무관하게 이 맥주들의 변별력을 증명해 주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맥주 브랜드 맞추기의 정답률 평균은 34.72%. 각 맥주의 정답률은 아사히 50%(18명 중 9명), 칭따오와 하이트 33.33%(18명 중 6명), 카스 22.22%(18명 중 4명)였다. 이 실험을 무한번 ‘찍었을’ 때 각 맥주의 정답률은 25%에 수렴한다. 사실 나머지 맥주야 ‘찍었을’ 때 정답률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아사히 맥주의 변별력이 50%나 됐다는 것은 4종의 맥주 중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고 해석해도 될까?

◇번외편. ???: “국산이라 그런지 기분 나쁜 신맛이 나고...수입은 깊은 맛이 있네요” (땡~!)

원래 이런 실험은 엄격·근엄·진지하게 임했지만, 결국 틀린 답을 쓴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가장 재밌다. 그래서 장황한 설명을 했지만 오답을 내놓은 사람들, 어처구니없는 답을 내놓은 사람들, 자신이 왜 틀렸는지 설명하는 나름의 변명을 나열해 본다.

전체 참가자 중 가장 정성스러운 오답(?)을 덧붙여 말한 참가자가 있어서 먼저 소개해 보겠다. 첫 번째 실험에서 “이 맥주(아사히를 들며)는 기분 나쁜 신맛이 있는 걸 보니 국산 맥주고, 이건(카스를 들며) 좀 더 깊은 맛이 나는 걸 보니 수입인가 보네요”라고 말한 5년차 J 기자다.

틀린 소감을 물으니 “사실~ 요새 맥주를 끊고 와인만 먹는 데다가, 소맥 말고 맥주만 따로 마신 것도 너무 오랜만이다. 심지어 나는 ‘호가든 파’이고, 아사히는 몇 번 먹어본 적 없어서…”

됐고, 다음 분 소개한다. 국산-수입 구분 실험에서 C 부장은 밋밋하다는 평가를 내린 맥주가 ‘아사히’, 톡 쏘는 끝 맛이 살아있다고 평가한 맥주가 ‘카스’라고 지목했다. 뭔가 이상하지만(?), 아무튼 정답이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국산 맥주를 수입 맥주보다 고평가하는 듯했지만, 어쨌든 정답을 맞췄다.

어떤 참가자는 국산-수입 구분 실험을 하는데, 분명 훼이크가 숨어있으리라 의심했는지 두 맥주가 ‘칭따오’, ‘아사히’라고 적어내기도 했다(그것도 익명으로). 의심병 환자다. 그러나 그가 자신 있게 지목한 ‘아사히’는 ‘카스’, ‘칭따오’는 ‘아사히’였다. 실험에 방해가 돼서 이 응답은 어쩔 수 없이 빼야 했다. 꼭 이렇게 별난 사람들이 있다.

▲원래 이런 실험은, 이렇게 진지하게 틀린 분들이 재밌다. 이 캡처 사진에서 나온 허혁구씨는 실제로는 유능한 소믈리에로 알려졌다. (출처=KBS의 옛 시사교양 프로그램 '스펀지')

마지막으로는 국산 2종, 수입 2종의 맥주를 브랜드별로 구분하는 2차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오답의 변을 모아 1~3위로 정리해봤다. 실험의 객관성을 의심하는 변명이 많은데, 집에서 도움을 받아 한 번 더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또한 “나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는 독자분도 재미삼아 실험해 보길 권한다.

◇변명 1위: 늘 소맥만 마시는 바람에 맥주만 먹을 일이 없었던 것뿐이다. 소주 몇 방울만 타 주면 다 맞출 수 있다.

◇변명 2위: 난 김 빠진 맥주는 안 먹는다. 테스트한 맥주는 김이 빠져서 맛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변명 3위: 술은 안주랑 같이 먹는 것 아니냐. 술만 먹으니 맞추기 어렵다. 안주를 가져와라.


<후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참가자들이 테스트 결과에 대해 상당한 감정 이입을 했다는 것이다. 정답자는 뛸 듯이 기뻐했고, 오답자는 '그럴리가 없다'며 아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40~50대의 참가자들이 유독 그랬다.

술에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한다. 부서회식이다, 관계사 저녁자리다 등등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간 기억들… 좀처럼 자리가 끝나지 않아 전전긍긍할 때 울리는 전화. "아빠 언제와?"

실험이 끝난 뒤 누가 말했다. "그동안 그렇게 마셨던 술인데도… 실상은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죠. 어찌 보면 그간의 시간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져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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