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파(破)의 성어로 배우는 인생성장

입력 2018-1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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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글귀다. 자신의 지식, 신념, 기득권, 관습이라는 익숙하고 편안한 알에서 깨어나 늘 새롭게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단지 벗어나는 것을 넘어 깨뜨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깨치는 각성도 요구된다.

한자 깨뜨릴 파(破)는 돌 석(石)과 가죽 피, 즉 표면을 뜻하는 피(皮)가 합쳐진 글자다. 돌이 몸체에서 분리돼 부서지는 모습을 담았다. 본체에서 쪼개져 나가며 석수장이의 연장에서 파란 불꽃이 튀기는 모습이 연상된다.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치는 각성과 깨지는 아픔을 받아들일 용기를 함께 요구한다. 파(破)와 관련된 성어에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내용이 담겨 있다. 파부침주, 파증불고, 파천황 모두 전진, 행진을 담고 있다.

파부침주(破釜沈舟)는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상대가 강해 보이거나 목표에 대한 의지가 흔들릴 때도 겁내지 않고 승부수를 던지는 것을 일컫는다. 초나라의 항우가 거록에서 진나라와 일전을 벌이기 전에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뜨린 후에 공격하여 이긴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돌을 아끼면서 돌팔매질을 잘하긴 힘든 법이다.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다는 ‘파격(破格)’의 승부수를 던졌기에 항우는 역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고르는 것은 버리는 것과 동의어다. 솥을 깨는 선택의 결연함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데서 비롯된다. 파부침주 이야기가 탄생한 바로 그 거록지역에서 또 한번의 파(破), ‘깨진 시루’ 이야기가 등장한다.

파증불고(破甑不顧), 문자 그대로 ‘깨진 시루를 돌아보지 말라’이다. 파부침주가 미래를 향한 겁 없는 용기라면 파증불고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없애는 마음 자세다. 영어 속담에 “엎질러진 우유를 놓고 울어봐야 소용없다”쯤에 해당한다. 후한(後漢)시대에 맹민(孟敏)이라는 사람이 시루를 등에 짊어지고 가다 실수로 깨뜨렸다. 그런데도 깨진 시루에 아쉬운 눈길 한번 던지지 않고 태연하게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당대 석학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시루가 깨져서 이미 쓸모가 없어졌는데 그것을 되돌아본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의연하게 답하더란 데서 비롯됐다.

이 ‘담대함’을 높이 산 석학 곽임종(郭林宗)이 문하에 받아들여 인재로 키워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과거에 행한 것에 대한 후회, 또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은 괴로움과 손해만 끼칠 뿐이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마음에도 용불용설이 작용한다. 과거에 고통받는 서퍼(suffer)보다 현재를 즐기는 서퍼(surfer)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이 파증불고의 결연함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낸 것을 의미하는 파천황(破天荒)에도 파가 들어간다. 중국 당(唐)나라 선종 때 형주는 인재 불모지로 천황(天荒)이라 불리는 벽지였다. 그런데 유세라는 사람이 이 지역 출신으론 처음으로 과거에 합격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천황(天荒)’을 깨다, 요즘 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는 뜻이다.

파천황에서 배울 것은 유연함이다. 편견, 고정관념은 남의 생각뿐 아니라 내 의식까지도 포함된다. “○○○라서 너는(나는) 안 돼”라는 소리가 나의 내면으로부터, 외부로부터 들릴 때 파천황의 고사를 되새겨보라. 편견과 자기비하를 벗어나는 것이 유연함의 요체다.

‘파의 고사성어 3총사’엔 인생 성장을 위한 명심사항이 담겨 있다. 파부침주에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결연함, 파증불고에선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의연함, 파천황은 주위의 편견, 그리고 본인의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말랑말랑한 유연함을 가져야 파의 성장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3파의 결연, 의연, 유연한 정신을 가지면 어떤 거센 파고도 거쳐나갈 수 있다.

2018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19년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올해에 버리고 갈 것, 새해에 이어나갈 것, 그리고 새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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