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대기업-벤처, 상생 파트너로… 상설협의체 만들어야”

입력 2019-01-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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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담보·연대보증 폐지 등 적극 검토해야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이투데이 DB
“2019년에는 벤처기업이 삼성이나 애플 같은 대기업 앞에서 다리 꼬고 앉아서 협상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야 국내 벤처업계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장기적 발전이 담보 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1일 경기도 판교에 있는 지문 인식 보안 시스템 전문업체 크루셜텍 본사에서 만난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크루셜텍 대표)의 말은 단호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는 국내 벤처기업들이 발전할 수 있는 선결조건을 ‘라운드 테이블’이라고 지목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벤처기업의 기술을 놓고 대기업이 얼마를 지불할 지에 대해 대등한 논의와 협상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벤처기업의 기술을 존중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합의’가 존재하지 않고는 벤처기업들은 계속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기업과의 상설협의체 구성 속도낼 것 = 안 회장은 대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이 모인 상설협의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2019년에는 이를 구성하는 데 속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앞서 벤처기업협회와 다른 국내 벤처단체들이 결성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지난해 8월 삼성을 비롯한 5개 대기업과 대·중소기업 간 인수합병(M&A) 활성화 등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취지의 상설 협의체를 만든다고 발표했었다.

당초 9월에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 그룹과 벤처기업협회가 첫 만남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무산됐다.

안 회장은 “대기업과 지속적으로 논의를 진행해 나가고 있고 가능한 이른 시간 내에 한자리에 모여 논의하는 킥오프 회의를 제안해 이에 대한 대기업 측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현재는 5개 대기업에 제안을 한 상태이지만 향후 10대 그룹으로 확대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벤처기업 생태계와의 결합으로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상설협의체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안 회장은 “공정경제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돈 많은 회사가 작은 회사를 도와주는 게 상생이고 공정경제인 줄 아는데 그것이 아니다”면서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당당히 라운드테이블에 앉아 회사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상생이고 공정경제다. 대기업이 지금처럼 ‘내 밑의 하청’이라는 의식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벤처기업도 반대하는 ‘협력이익공유제’ = 안건준 회장은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 간의 상생 차원에서 추진 중인 ‘협력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 간의 상생을 위한 정책은 예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며 “이익공유제 자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100% 선의로 생각하지만 벤처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안 회장은 “탁상공론에서 나온 안이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안 회장은 정부가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내놓은 정책이 오히려 부작용이 된 예로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에 기술 탈취를 할 수 없도록 만든 상생법안을 들었다. 오히려 기술 위주의 제조벤처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의 제품을 독점적으로 쓰라는 것이었지만 기술을 개발한 기업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겼다는 것.

안 회장은 “대기업이 납품받는 중소업체 외에 다른 회사에도 해당 부품을 똑같이 만들어 오라고 한 뒤 비교를 한다. 그러면 먼저 기술개발한 업체는 개발비가 들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개발비를 안 쓴 다른 업체가 납품을 하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라며 “결국 최근 몇 년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국내 혁신벤처가 다 사라졌고 누구도 기술개발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익공유제도 비슷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게 안 회장의 의견이다. 그는 “삼성전자 같은 경우에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가 넘기 때문에 주주가 이익공유제에 해당되지 않는 중국 기업의 제품을 납품받으라고 하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고 결국 국내 중소기업들이 다 망할 수 있다”며 “선의는 분명히 좋으나 부작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충분한 대화를 통해 많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서두를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기업경영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힘들어도 미담이 되지만 실패하면 악몽이 된다”고 꼬집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일본·중국 사이에서 ‘넛크래커’ 된다 = 안 회장은 벤처기업협회가 2019년 역점을 둬 추진할 또 다른 사업으로 기업 규제 해소와 ‘기업 기살리기’를 꼽았다. 우선 기업 규제 해소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해 이노비즈협회 등 13개 단체가 구성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2022년을 목표로 ‘혁신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2017년 제안했다. 혁신·벤처생태계의 목표를 비롯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로드맵·세부 정책과제로 구성된 해당 계획은 작년까지 총 90개 과제가 해결됐다.

안 회장은 “2019년에는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제안한 160개 규제혁신 과제 중 해결되지 않은 70개를 최대한 빨리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협회가 서두르는 이유는 2019년이 국내 벤처생태계를 개선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보기 때문. 안 회장은 “정부가 창업을 비롯해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놓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한 기대감이 높다”면서도 “최근 일본과 중국의 벤처업계의 움직임을 감안해 봤을 때 국내에서 벤처기업에 유리한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일본, 중국 사이에서 국내 벤처업계가 ‘넛크래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기술 위주 벤처 창업 많아져야 = 안 회장은 게임이나 요식업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경제에 더 큰 보탬이 되려면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벤처의 창업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위주의 창업을 하려면 정부 출연연의 연구원이나 교수 등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하고 그만큼 어려운 업종에서 창업을 해야 장기적으로는 더 성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안 회장은 기술 창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금융권의 ‘안전망 확보’를 제안했다.

그는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각종 혜택과 지원을 늘리는 만큼 금융권에서도 대출 시 담보 요구나 연대보증 폐지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며 “기업이 잘될 때는 서로 돈 빌려 가라고 하면서 상황이 나빠지면 앞다퉈 자금 회수를 하려 하는 ‘비 올 때 우산 뺏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창업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세상에 없던 정말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기 때문에 종전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어떻게 융합하느냐가 사업 아이템 선정의 핵심”이라며 “한번 해볼까 하는 창업이 아니라 모든 실패 가능성을 다 생각하고 자금 마련 방법부터 마케팅까지 최대한 상세하게 계획서를 만들어야 실패 가능성을 10분의 1,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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