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인터뷰
'인생은 (30세)부터'라는 말이 있다. 괄호 속 나이는 상황에 맞게 끼워 맞출 수 있다. 40대를 목전에 둔 이들은 '인생은 40세부터'라며, 새로운 삶을 설계할 것이라 자신한다. 50·60세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꾸려온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인생은 언제부터 '시작된다'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소위 '어른'들도 아직 자신의 삶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얻고 싶어 한다.
이 흔들림은 20살 청춘에겐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꽃길만 열릴 것으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달렸지만, 캠퍼스 위에서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너무나도 무겁기만 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온 것인가'라는 아주 피상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앞으로의 진로, 재테크 등 아주 현실적인 고민까지 한다. 그 고민은 어느새 청춘들의 자아를 집어 삼켜버린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교수의 심리학 교양강좌인 '흔들리는 20대'를 수강하기 위해 매년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다. 이 강좌는 대학 입학 후 극심한 혼란을 겪는 학생들이 방황하지 않고 인생설계를 잘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2005년 개설됐다.
그는 "치열한 입시를 마치고 서울대까지 온 학생들이지만,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강의는 신입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미 강의를 들어본 선배 혹은 친구들의 추천 때문이다.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 강의에서는 사랑·우정부터 성행동·동거, 진로 등 20대를 감싸는 고민들이 주제로 다뤄진다.
◇ '사랑'에서 '진로'로 바뀐 청춘들의 고민
<20대 심리학>, <습관의 심리학> 등 저자로 잘 알려진 곽 교수와 최근 서울 동작구 여의대방로 이투데이 사옥에서 만났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위로받고, 자신을 위한 조언이 절실한 2030 세대의 심리를 파고든 그를 통해 사회 기저에 깔린 심리를 들여다봤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만 해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고민이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한꺼번에 터져버리는 거예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결과 중심적 성취동기로 키워지기 때문에 더욱 그런 거죠. 전공이 안 맞아서 휴학했다가 고시 준비를 하고, 다시 복학한 10학년 학생이 상담을 요청해온 적도 있어요. 강의를 들은 이후에 이제야 본인을 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2011년 이전까지 학생들은 '사랑'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진로'라고 답한다. 사랑, 행복과 같은 내 안의 감정보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게 가장 주된 관심사가 돼버린 것이다. 곽 교수는 "사랑 챕터를 3~4주 진행하는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받기도 한다"며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고 했다.
"젊은 친구들은 다 썸만 타잖아요. 손해 보기 싫고, 간만 보다가 차일 것 같으면 더는 다가가지 않고요. 옛날엔 죽기 살기로 쫓아다녔는데 이제 그런 건 하나도 없어요. 자신만 가꾸는 '초식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진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지 잘하는 일을 할 것인지는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외재적 동기는 '돈'인데, 그것만 좇으면 허망해집니다. 또 다른 것을 찾아야 해요. '의미 만들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인생의 의미를 찾지 않고 자기의 가치관을 먼저 확립하지 않으면 또다시 흔들릴 테니까요."
◇ 잠 줄여가며 연구하는 완벽주의자…"'SKY 캐슬'보다 더한 집에서 자랐죠"
곽 교수는 요즘 TV 드라마 'SKY 캐슬'에 흠뻑 빠져 있다. 심리학자답게 'SKY 캐슬' 얘기를 꺼내자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SKY 캐슬'은 입시경쟁, 과시욕, 입시 비리 등 우리 사회 단면을 다 보여주는 사회 고발성 프로와 같다"고 분석했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탔는데, 20대 후반 여성이 자신의 친구한테 '우리 엄마는 SKY 캐슬 못 봐. 우리 어릴 때 혼내던 것 생각난대.'라고 말하더라고요. 드라마에 나온 가정들은 굉장히 부유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부잣집에만 국한되는 것들이 아니거든요. 부모가 자기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는 심리는 어느 계층에나 있죠. '나도 아이의 공부 때문에 그 난리를 피웠는데', '나도 엄마랑 저렇게 갈등했는데'라고 공감하면서 드라마를 보게 돼요. 동시에 '배 아픈 심리'를 해소하기도 해요. 꼭대기에 있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한참을 'SKY 캐슬'을 분석하고, 결말을 추측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자연스럽게 슬하에 두 자녀를 둔 곽 교수에게 자녀를 키운 방식에 대해 물었는데, "SKY 캐슬과 정반대로 키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희 어머니는 '타이거맘'이셨어요. 말 그대로 'SKY 캐슬'이었죠. 아버지는 서울대, 어머니는 이화여대를 나오셨는데, 자녀에 대한 욕심이 말도 못했죠. 공부는 무조건 잘해야 돼요. 그런데 제가 직업을 가지는 건 싫어하셨어요. 굉장히 이중적인 거죠. 여자가 직업을 가지는 게 싫으면 공부를 안 시키면 되잖아요. 저는 지금도 연구할 때 굉장히 강박적으로 해요. 토씨 하나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릴 때부터 완벽히 준비한 후 시험을 봤으니까요. 그래서 제 아이들한테는 '너희가 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을 해라'라고 했는데, 오히려 서운해하더라고요. 하하."
곽 교수는 국내 박사다. 이 역시 외국 유학을 가면 안 되고, 여자가 일하면 시집을 못 간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님의 영향이었다. "정말 이상한 옛날 사고방식이셨죠. 그래서 제가 젊은 친구들한테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심리학이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 서울대 커뮤니티에 떠오른 '곽서심교'…"심리학이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곽 교수의 이름은 언론을 통해서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전문가들이 내놓은 원인 분석을 신문 하단부에 싣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나 그의 이름 석 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앞글자를 딴 '곽서심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곽서심교' 너무 웃기지 않나요? 처음에는 무슨 종교 이름인가 했어요. 몇 년 전에 서울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게시판에 올라왔다고 하더라고요. 전혀 몰랐어요. 기분 나쁘지 않던데요?"
그는 많으면 하루에 열 통이 넘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상황이 되면 모든 전화를 받고 코멘트를 준다. 한때 한 언론사에서는 '곽금주는 아껴두자'는 지령이 내렸을 정도라고. 한 지면에 '곽서심교'가 중복으로 등장하면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학자로서 지식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봉사하는 방법도 여러가진데, 저의 심리학 지식을 기자에게 말하고, 기자가 대중들한테 알리는 것도 굉장히 보람된 일이잖아요.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하려고 더 공부하게 됐어요."
황당한 기억도 있다. 2011년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설이 터지자, 한 지상파 방송사가 찾아와 '서태지가 자신의 결혼에 대해 침묵했던 심리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곽 교수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서태지에게 직접 물어보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예프로그램에서 찾아오면 모를까'라는 말도 덧붙였더니 같은 방송사 연예 프로그램에서 찾아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곽 교수는 "모든 게 심리학으로 풀리는 줄 아는 것 같다"고 말하며 "하하" 웃었다.
주변에서는 왜 시간을 빼앗겨가며 인터뷰를 하고 있느냐고 타박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아까워서 잠을 줄여가며 해낸 연구로 책을 쓰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왕따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정립시켰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구한 것을 잘 알기에 주변에서 더 아까워한다. 하지만 그는 '곽서심교'라는 재미난 호칭을 얻고, 다른 교수들보다 '썸탄다' 등과 같은 신조어를 더 빨리 익히는 게 더 즐겁다. "저는 푼수예요."라는 말과 함께.
"제 전공인 발달심리학은 심리학의 소우주라고도 해요. 영유아부터 청소년, 중장년, 노년층까지 전 생애를 연구하니까요. 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에요.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고 얘기하는지 말해주는 학문인데, 연구실에서 논문만 쓰는 거로는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소통하는 거죠. 더 많이 보고 더 읽으며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저한테 '1인자', '유명한 심리학자'라고 하더라고요. 물정도 모르고 실리도 안 따지니까 '곽서심교'라는 말도 생겼잖아요. 강의나 책에서만 말했으면 그런 재밌는 용어도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이처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친(親) 코멘테이터인 곽 교수도 절대 하지 않는 코멘트가 있다. "대통령 심리, 국회의원 심리를 내가 어떻게 알아요? 제가 제일 관심 없는 게 정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