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0.001%의 투자 방법 ‘패밀리오피스’가 금융계에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패밀리오피스란 부호들이 집안의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 설립한 독립 자산 운용사이다. 운용 규모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이다. 1882년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 세운 ‘록펠러 패밀리오피스’에서 유래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패밀리오피스가 금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금융의 새로운 추세라고 소개했다.
패밀리오피스는 이미 세계 주식 시장 가치의 6%에 해당하는 규모로 4조 달러 상당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싱가포르와 홍콩 등 아시아 금융 허브를 기반으로 패밀리오피스를 둔 부호가 5000~1만 명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추정한다.
지난해에만 199명의 억만장자가 새로 탄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억만장자가 계속 늘면서 패밀리오피스가 금융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질 전망이다. 신흥 시장에서 1990년 이후 호황기에 기업을 설립한 고령의 기업가들과 미국 및 중국의 젊은 IT 기업가들이 투자를 위해 패밀리오피스를 세울 가능성도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부 자금 운용사에 대한 신뢰가 하락한 점도 패밀리오피스 붐을 키웠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미국의 투자 전문가 조지 소로스 등은 패밀리오피스를 보유한 대표적인 자산가다. 소로스의 패밀리오피스는 수천억 달러를 운용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와 대등한 수준이다. 은행 및 사모펀드 그룹과 경쟁해 기업 인수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회사를 팔아 수천억 원의 자금을 손에 쥐게 된 젊은 기업가들이 패밀리오피스를 열고 있다. 넥슨 매각을 추진 중인 김정주 회장도 투자자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A.H.C’ 아이크림으로 유명한 화장품업체 카버코리아를 유니레버에 매각한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은 패밀리오피스 ‘너브’를 통해 항균 필터 제조사, 영화제작사, 디자인 회사 등에 투자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은퇴한 기업가가 자산의 운용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개입하지 않는 수동적인 경우도 많다.
문제는 패밀리오피스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슈퍼 리치와 불투명성, 시장의 결합은 폭발성이 있다고 짚었다. 막강한 ‘큰 손’인 패밀리오피스가 경제 전반에 부유층의 권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만약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모든 자산을 터키에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그는 터키 증시의 65%를 보유하게 된다.
다만 패밀리오피스는 헤지펀드와 금융기관보다 부채 비율이 낮아 위기에 비교적 덜 취약하며 포트폴리오를 분산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는 현실성이 낮다.
가장 심각한 것은 패밀리오피스가 정보 접근성이나 거래 및 세금 제도상 특혜를 받아 일반 투자자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패밀리오피스는 부의 불평등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면서도 이를 심화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