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네 바퀴’ 트렌드
수요가 없는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 엄청난 물량을 공급하면 자칫 ‘파산’에 직면할 수 있다. 정확한 수요 예측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달라지는 셈이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대형 SUV들이 좋은 예다. 계약이 폭증하고 있지만 엄연히 회사의 전략 실패로 봐야 한다.
차 가격을 좀 더 올려서 책정했더라면 극심한 출고 적체를 피할 수 있는 데다 회사의 영업이익에도 상당 부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현대차 ‘팰리세이드’ 판매가격을 결정한 장본인은 요즘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제한적 제작비 속에서 다양한 아이디어 짜내 = 여러 산업 가운데 사실상 수요 예측이 불가능한 업종도 존재한다. 영화 산업이 그렇다. 다양한 영화가 각각의 제작비를 투자해 작품을 완성하고 상영관에서 개봉한다. 그러나 할리우드급 블록버스터나 국내 소자본 투자 영화도 관람료는 동일하다. 4D 상영관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투자비가 달라도 티켓값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어떤 영화는 작은 투자(제작비)로 큰 수익을 내는 반면,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흥행에 참패하는 경우도 많다.
극단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만큼 대규모 투자를 선뜻 단행하기도 어렵다.
결국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심정으로 제작비를 줄이고 줄여야 혹시 모를 흥행 참패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예컨대 150억 원 안팎의 국내 영화 제작비 가운데 주연 배우들의 출연료를 제외하면 특수효과 및 소품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할리우드 영화야 실감 나는 폭파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실제 건축물이나 교각을 건설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영화 주제가 시대극이라면 상황은 더욱 꼬인다. 적잖은 제작비를 극전개 과정 중 필요한 상황 연출에 투입해야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자동차도 대표적이다.
해당 시대를 가장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품 가운데 하나가 그 시대의 자동차인데 이 차들을 수급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김만섭(송광호 분)이 몰았던 브리샤 택시는 등장인물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영화 속에 등장할 브리샤를 구해 오는 일이었다.
최근까지 국내 영화에 등장한 이른바 ‘올드카’ 소품들은 전문 렌털 업체 몇 곳을 통해 조달됐다. 반면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이 보유한 영화 소품(올드카) 역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옛날 차를 구하는 게 점차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결국 영화 택시운전사를 기점으로 이제 올드카 소품은 빌리는 것이 아닌, 제작의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올드카 렌털업계 출신 관계자가 영화 시장을 예측하고 직접 고증과 당시 자료를 통해 차를 개조하기 시작한 것.
택시운전사에 등장한 브리샤는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어 일본에서 중고차를 수입했다. 1970년대 기아산업 브리샤는 일본 마쓰다 ‘파밀리아’를 밑그림으로 개발해 생산했기 때문에 여전히 일본에는 몇몇이 남아 있기도 하다.
오른쪽에 달려 있던 핸들은 왼쪽으로 옮겼고, 수동변속기는 자동변속기로 개조했다. 브리샤와 구성이 비슷한 세로배치 엔진을 찾다가 대우차 로얄 프린스의 ‘밴딕스’ 엔진을 개조해 얹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기술 발달로 시대 상황 연출 가능해져 = 영화에 등장한 현대차 포니 역시 차를 다시 만들다시피 했다.
이 차는 상대적으로 연식이 좋은 포니2를 구해 구형으로 개조했다. 겉모습은 포니지만 실내는 포니2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예컨대 열쇠 구멍은 존재하되 막혀 있고, 등화 장치는 달려 있지만 불이 켜지지는 않으며, 트렁크는 있어도 열리지 않는 방식이다. 디테일 디자인까지 신경쓰다 보니 영화 속 올드카들은 전문가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당시 상황을 대변했다.
당연히 국내에서는 수급할 수 없는 차들이다. 제작진은 미국 현지에서 운행 가능한 차를 직접 공수해 왔다. 이런 노력이 더해진 끝에 영화는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영화 산업의 발달은 그래픽 기술과 특수효과를 넘어 다양한 자동차 개조 및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영화를 통해 그 시대 상황을 보다 명료하게 보고 느낄 수 있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