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인싸가 아닐까? 남들은 다 아는걸 혼자만 모르고 있어서 그렇다. 래퍼 비와이가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이라고 외쳤지만, 모두가 대세를 알아보지는 못한다. [대세예보]는 유튜버ㆍ웹툰작가ㆍ웹소설작가 등, 주류로 부상한 새로운 콘텐츠 시장에서 스타가 될 사람들을 예보하는 코너다. 때론 찌질하면서도 때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 본다.
대한민국에서 ‘고3’이란 단어가 지닌 무게는 남다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SKY캐슬’ 신드롬이 보여주듯, 고3 시절을 격동의 시기로 보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고3들은 학업 스트레스란 이유로 자신의 생활 반경 내에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는다. 부모들은 고3 자녀를 뒀다는 이유로, 24시간 출동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라도 방심할 경우, 내 자녀만 족집게 학원 강의를 놓치거나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고3. 힘들었지만 그만큼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평생 기억에 남는 시절이다. 그때 만나 힘든 시간을 함께 겪은 고등학교 친구들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벗이다. ‘괜찮아, 고3이야’ 김주형 웹툰작가는 고3 시절이 힘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 인생에 엄청난 임팩트를 주지 않았다면 ‘괜찮아, 고3이야’ 작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3 시절은 내 인생에 많은 추억을 남겨준 소중한 시간이에요. 하지만, 절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웃음)
26일 오후 서울시 중구 신당동 근처에서 만난 김주형 작가를 만났다. 수능을 본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캘린더에 수능 날짜를 표시하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고 한다. 독자 대부분이 고3 수험생인 만큼 그들에게 응원을 줄 수 있는 콘티를 짜고, 웹툰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저도 수험생 때 웹툰을 보면서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어요. 웹툰은 인터넷에 처음 웹툰 코너가 생겼을 때부터 보기 시작했죠. 그래서 웹툰으로 힘을 얻는 수험생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김 작가가 ‘괜찮아, 고3이야’를 통해 풀어내는 고3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작가의 경험과 팬들의 사연으로 만들어진다. 고3은 작가의 설명대로 ‘절절한 로맨스도, 화려한 액션도 없는 노잼 현실’이지만, 그 노잼 현실 속에서 친구들과 찾아가는 일상의 행복과 즐거움은 인생에 한 번 뿐인 소중한 추억이다.
그가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에 작품을 올린 지도 4년이 흘렀다. 현재 '괜찮아, 고3이야'는 독자들에게 8000개의 ‘좋아요’를 받았고, 회마다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베스트도전으로 이름을 알린 김 작가는 에이전시와 계약도 해, 외주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김 작가는 베스트도전으로 얻는 직접적 수익은 없지만, 이런 외주 작업을 통해 수익을 올린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성공한 웹툰 덕후다. 공부하는 틈틈이 좋아하는 웹툰을 읽고, 책과 노트에 그림을 그리면서 고3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동기 부여를 위해 가고 싶은 대학교에 다니는 본인의 모습을 그려, 스터디 플래너 앞에 붙여 두기도 했다. 목표로 하던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에서 합격 소식을 듣고 그 그림을 다시 봤을 때, 마음속 어딘가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하지만 김 작가의 진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대학교 졸업반의 평범한 24살 청춘이다. 명문대에 다니면서 취미로 하던 웹툰까지 성공했기 때문에 남들에게 그의 고민은 배부른 고민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김 작가에게는 인생에 둘도 없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사범대학을 졸업해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되는 안정적인 길과 적성을 살려 전문적인 웹툰 작가가 되는 불안정한 길 중 무엇이 정답일지 끊임없이 갈등 중이다.
“저는 진로를 고민하는 평범한 취준생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면 되지만, 그러면 취미를 잃어요. 취미도 누가 시켜서 하면 의무가 되고 힘들어지니까요. 취미는 취미로 두고 다른 일을 찾아 취업할 수도 있죠. 그러면 직장생활에 치여 취미생활 할 시간이 없겠죠.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 고민. 저뿐만 아니라 모든 취준생이 하는 고민이겠죠?”
김 작가는 이런 고민 탓에 그림을 좋아했음에도 입시 미술을 하지 않았다. 그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 다음으로 좋아했던 과학 과목을 살릴 수 있는 가정교육과를 택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과 미대에 가지 않은 것에 후회는 없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대학교 신입생이 돼서야 웹툰을 올리기 시작해서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시작했다면 더 폭넓은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대학교에 와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도 놓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괜찮아, 고3이야’ 웹툰을 읽는 고등학생들에게는 이와 관련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현재 고3이라도 자신처럼 대학만을 목표로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 내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그에 맞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고3 당시에는 대학이 인생 전부였고, 내가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에만 매달렸어요. 그때 제대로 진로를 고민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대학은 인생의 수많은 관문 중 하나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어요. 대학에 오면 그보다 더 큰 관문들이 많고, 그 관문들을 다 이겨내기 위해서는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김 작가가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들은 만화를 통해 수험생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수험생 팬들이 지칠 때마다 ‘괜찮아, 고3이야’를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는 댓글을 남길 때,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가 ‘괜찮아, 고3이야’ 얘기로 자녀와 대화를 시작한다고 할 때 작가로서 감사함을 느낀다.
김 작가는 인터뷰를 말미, 인생의 목표에 대한 질문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용기 내서 자신 있게 하고 싶어요. 나이가 든 제 노후를 생각해보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이 외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