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그의 연설이 파격적·도발적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메시지에 천착해 보면 일반 인사들과 대동소이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공공선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란 이야기였다. 그날 식장에서 같이 축사를 한 다른 인사들, 그보다 앞서 유한대학교에 가서 축사를 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도 유사했다. 현재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전하고 기여하라는 것이었다(이는 국내 대학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도 단골 메뉴라고 한다.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졸업식 축사의 3분의 2 이상이 이 같은 레퍼터리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도 방 대표의 축사가 남다른 감동을 준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축사는 탈(脫)꼰대의 소통법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반권위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라. 사람들은 권위보다 반권위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연다. 이번 방 대표 축사의 히트 방점은 ‘꿈이 없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더라’는 초반 에피소드였다.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류의 고백은 신세대 코드에 딱 맞았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꿈은 이루어진다, 야망을 가져라’, 맨땅에 헤딩해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룬 이야기를 뻔하고 지겹다고 생각한다.
여러 개의 토막 이야기보다 하나의 플롯을 가진 이야기로 구체적으로 전달하라. 단 ‘눈물 젖은 빵’류의 이야기, “나도 청춘기에 방황과 고민과 회의를 많이 겪었습니다”류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둘째, 핵심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라. 익숙한 단어를 쓰면서도 새롭게 정의 내리면 표현이 참신해져 꼰대스럽지 않다. 방 대표의 축사 키워드는 분노와 행복이었다. 분노와 행복, 서로 모순되는 두 단어를 함께 묶어서 삶의 의미의 양대 기둥으로 묶은 것도 참신했다.
분노와 행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부한 언어들이지만 그는 새롭게 정의 내렸다. 나름 민주화에 앞장서왔다고 자부하는 586세대들은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며 사회 정의에 무관심해 보이는 청년층을 탓했다. 한편에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청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한다면서도 ‘이 또한 다 겪게 마련인 성장통이니 참을 것’을 은연중 강조하기도 했다. 청년들은 분노론에 대해선 극심한 취업난 등 현실론을 들이대며 ‘내 코가 석자인데 무슨 여유로’라고 반발하기 일쑤였다. 또 ‘아프니까 청춘’의 공감론에는 ‘아프면 환자, 너나 아프세요’라며 거부감을 표했다.
방 대표는 이 같은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어 정의를 내린다. 행복을 감정적 행복과 이성적 행복으로 분류하고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이를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청년층이 ‘행복’ 하면 떠올리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느끼는 행복)과 분명히 줄을 긋는다.
분노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이불리(利不利)를 위해 불만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 불공정, 불합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진정한 분노라고 의미를 규정한다. 기존의 586세대의 분노론이 거대담론으로 접근했던 데 비해, 주변의 잘못된 관행 등 개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분노란 점에서 방 대표의 의식은 신세대와 통했다. 이들은 불공정, 차별, 위선의 이중성에 더 분노를 표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셋째, 다짐형으로 말하라.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비판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과거형으로, 본인을 열외로 두기 때문이다. 방 대표의 축사를 다시 살펴보자. 그는 결코 성공한 리더로서 훈수를 두며 열외, 유체이탈 화법을 쓰지 않는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이제 ‘나는 성공한, 나이 든 사람으로서 잘하고 있으니 나처럼 해보라’는 것보다 나도 여전히 앞으로도 노력하겠다는 진솔한 다짐이 공감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