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주인 잘못 만난 온양관광호텔, 빚보증으로 회생법원까지
2015년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치계까지 떠들썩 했던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에게 준 보증서 한 장에 호텔은 쓰러졌고 이제는 또다시 주인을 찾는다. 호텔로 벌어들인 돈은 이자로 다 까먹고, 이제는 그나마 갖고 있던 땅도 팔아 생면부지 주인의 빚을 갚아주게 생겼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비극적인 온양관광호텔이 기업회생 보고서 3번째 주인공이다.
“A사를 제외하면 66.77%에 해당하는 채권단이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채무를 변제받는 것이 채권자 입장에서도 유리하다.(서울회생법원 재판부)”
2019년 1월 30일, 서울회생법원 재판부는 온양관광호텔을 대명종합건설의 관계사인 태풍루첸에 매각하는 안을 ‘강제’로 인가했다. 채권자의 동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호텔의 청산을 놔둘 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8년 4월부터 회생법원을 찾은 온양관광호텔은 그해 11월 매각이 한 차례 유찰된 경험이 있다. 매각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반대 의사를 밝힌 A사는 회생채권자 의결권 총액의 30.11%를 들고 있던 ‘경남기업’이다. 이곳 회생법원에선 경남기업은 채권자 자격으로 온양관광호텔을 마주했지만, 호텔의 100% 지분을 들고 있던 주인이자, 호텔을 회생법원까지 데리고 온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는 떠나보낼 자식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회생 절차 과정을 문제 삼고, 현재 항고를 진행 중이다.
◇천안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인수했다?
둘의 만남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화 작업이 지체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온양관광호텔은 1995년부터 법정관리 중이었다. 고(故) 성완종 씨가 회장으로 있던 대아건설(경남기업의 전신)이 호텔의 지점을 폐쇄하고, 현재 위치의 온양관광호텔을 회사 호텔부분으로 편입시킨 것이 시작이다.
“내 고향 충청남도와 사업상 인연을 맺을 기회가 찾아왔다. (…) 지역유지들로부터 온양관광호텔을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호텔업에는 문외한데다, 온양관광호텔이 사업규모도 작아서 망설이고 있는데, 그분들은 적임자가 나밖에 없다며 설득을 계속했다.”<새벽빛, 성완종 지음>
성완종 회장은 온양관광호텔 자체는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그런데도 이를 인수한 것은 온양관광호텔을 허물고 인근 상가를 개발해 5000평 규모의 대형복합 센터를 지으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산시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로 키울 심산이었다. 성 회장이 “한꺼번에 거액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라 표현할 정도다. 허물 계획을 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대아건설의 자회사가 아닌 호텔 부문 사업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하지만 성 회장은 이를 철회했다. 온양관광호텔은 아산시의 ‘온양온천’ 터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또 호텔 안에는 조선 시대 문화재인 영괴대(충남문화재자료 228호)가 있다. 사유지임과 동시에 문화재인 독특한 호텔이다. 개발을 위해서는 시와 문화재청의 허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성 회장은 “아산시와 유지들이 반대했다”라고 적었지만, 이에 대해 아산시 측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대신 성 회장은 호텔의 내부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중축공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온양관광호텔은 2003년 7월부터 물적 분할돼 경남기업의 100% 자회사로서 직접 재무제표를 생산했다.
◇배보다 더 큰 배꼽…이자비용이 당기순이익의 10배
인수된 이후 호텔 자체 수익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급속도로 불어나는 ‘이자비용’이 호텔을 갉아 먹었다. 온양관광호텔은 장·단기차입금 때문에 매년 15~20억 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하면서 간신히 1억 원 수준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었다.
과도한 이자 비용의 근원은 호텔 자체의 부채가 아닌, 모기업이 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채 탓이었다. 건설경기 악화로 경남기업도 위기를 겪고 있었다. 호텔 건물과 부지를 담보로 온양관광호텔은 경남기업의 지급보증을 섰다. 호텔 자산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더욱이 운영 자금에 필요한 금융차입도 있던 터다. 물론 경남기업이 모기업으로 존재하는 이상 ‘터지지 않는 폭탄’일 뿐이었다.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성완종 회장이 검찰에 기소되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분식회계’ 논란이 빚어지며 경남기업도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경남기업이 법정관리가 종결되면서 온양관광호텔의 주채무는 면책됐지만, 보증채무는 그대로 남았다. 경남기업이 삼라마이다스(SM)그룹으로 인수되면서 호텔의 토지와 건물이 몽땅 온양관광호텔의 금융보증부채로 잡혔다. ‘터지지 않는 폭탄’이 재무제표에 반영되면서, 빵! 터진 것이다.
◇마지막 기회?…대명종건의 인수 제안
온양관광호텔의 2017년 한 해 당기순손실은 271억 원으로 전년(2억4000만 원)보다 111배 늘었다. 총부채는 514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이 결산 실적이 공시된 시점에 온양관광호텔은 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온양관광호텔은 성 회장의 로비 창구로도 유명(?)했다. 충청권의 사랑방으로 통했다. ‘성완종 리스트’로 불거진 정·관계 인사들이 온양관광호텔 객실에서 만남을 이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다. 검찰수사과정에서 성 회장의 측근이었던 온양관광호텔의 대표이사에 대한 조사까지 이뤄졌다. 호텔을 없애고 대규모 경제복합 단지를 구상하려했던 그의 계획이 현실이 됐다면, 아니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온양관광호텔과 그의 미래는 달랐을까.
입찰 과정에서 대명종합건설이 들어온 건 온양관광호텔로서도 의아했다. 시장에서 호텔은 매물로서 좋게 평가받지 못한다.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특히나 건설사와 사업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어렵다.
청산가치를 263억 원으로 책정하고 온양관광호텔은 이 안을 받아들였다. 더는 미루거나 거절할 선택지도 없었다. 이것을 거절하면 호텔은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갚아야 한다. 경남기업 측이 끝까지 회생 계획안을 문제 삼았던 것은 자신들에게 배정된 낮은 변제율 때문으로 해석된다. 온양관광호텔 관계자는 “청산 절차를 밟으면 호텔 건물과 대지 등을 팔아 돈을 더 회수할 수 있겠지만, 호텔 직원들은 직장을 잃고 고객은 호텔을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김종하 온양관광호텔 대표이사 “호텔 혼자였다면 죽지 않았다”▲김종하 온양관광호텔 대표이사.“호텔이 혼자 자생만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종하 온양관광호텔 대표이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모기업 경남기업의 실적 악화와 더불어 일명 ‘성완종 스캔들’에 휘말리며 법정관리까지 겪었던 사연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호텔이 1년에 12~14억 원씩을 변제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쓰인 돈은 호텔에 투자되지도 않았다”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모기업) 경남기업에서 단 10원도 투자 도움을 주지 않았다. 호텔이 벌어서 직원 급여도 주고, 수리하고 3년간 살았다. 급여를 줘야 하니까. 가지고 있던 재산도 다 팔았다. 개인적으로도 빌려왔고. 연봉은 올리지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후의 처신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경남기업이 인수 절차를 문제 삼고 항고를 한 데에 대해서 김 대표는 “회생절차 변제율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있지만, 회생절차를 문제 삼는 것은 인용되기도 힘들다. 호텔이 청산되면 대짓값만 400억 원 정도 나오니, 그게 아까운 게 아니었나. 경매에 들어가면 정리되고 쉽게 가져갈 수 있는데, 갑자기 인수업체가 등장했으니 자기들 입장에선 훼방꾼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회생절차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돈의 논리’였다. 그는 “인수자든 누구든 실리가 중요하지, 기업 윤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세차익을 가져가면 그만”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매각이 안 되면 경매로 넘어간다. 영업도 물론 혼란스럽다. 직원 고용도 흩어지고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이렇게 되면 호텔이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며 호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호텔에 온 목적도 법정관리 하에서 살리기 위해서 온 것”이라며 “20년 뒤에도 놀러 와서 근무했다는 생각을 하고 싶었다. 회생 종결까지만 생각하고 그 이후는 생각 안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