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토교통부는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공동주택의 분양가격 공시항목을 세분화해 62개로 확대하는 ‘공동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 규제심사 통과 후 법제처 심사가 완료돼 21일 공포‧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1일 이후 공공택지에서 공동주택 입주자모집승인 신청을 하는 주택사업자는 입주자모집 공고 시 분양가격 공시항목을 62개로 세분화해 공시해야 한다.
이번에 개정하는 62개 분양가격 항목 공개를 최초로 적용하는 아파트 단지는 위례신도시에서 분양 예정인 힐스테이트 북위례(A3-4A BL)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기존 분양가격 공시항목은 택지비(3개)와 공사(5개), 간접비(3개), 기타 비용(1개) 등 4개 항목, 총 12가지였다. 공사비 항목으로는 토목, 건축, 기계설비, 그 밖에 공종과 공사비 등 5가지를 공개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공사비는 모두 51개 항목으로 세분화시켜 공시해야 한다.
토목공사비는 토공사·흙막이공사·옹벽·우수·오수·공동구·석축공사 등 13개 항목을 공개하고, 건축공사비 역시 공통가설공사·가시설물공사·철근콘크리트 공사 외에도 철근콘크리트 공사, 용접공사, 조적공사, 미장공사, 단열공사, 방수․방습공사, 목공사 등 23개 항목을 공개해야 한다.
이외에도 기계설비 공사비는 급수설비·급탕설비 등 9개 항목으로 세분화했고, 간접비도 설계·감리비 외 일반분양시설 경비와 분담(부담)금까지 6개 항목으로 나눠 공시하도록 했다.
이번 공시항목 확대를 통해 주택 소비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적정가격의 주택 공급을 유도해 국민 주거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에 항목을 늘린 것만으로는 진정한 '분양원가 공개'와는 거리가 멀고 집값 거품을 빼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투입되는 금액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건설사들이 도급계약을 맺거나 총사업비를 단순 공식으로 나눠 공개하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을 알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분양가 중 가장 큰 항목을 차지하는 토지비에 대한 원가 공개는 빠져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늘리면 일부 항목의 가격 거품을 걷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택지조성 원가 공개 등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공시항목 확대만으로 분양가 인하 효과를 보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택 공급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인 토지비, 재료비, 인건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토지가격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계한 전국 분양 아파트 입주자 모집공고 기준 분양가의 땅값 비율은 2017년 1분기에 30%에서 2∼4분기 각각 39%, 45%, 52%로 급등했다.
여기에 땅값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해 전국 지가 상승률은 2006년 이후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에 따라 올해 공시가 및 매입가는 더 큰 폭의 상승이 예상된다.
결국 정부나 시민단체가 원하는 수준의 분양가 인하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토지조성 비용 역시 원가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원가공개를 통해 건설사들을 압박하면 공공택지 분양을 꺼리게 돼 장기적으로 공급이 줄어들 경우 오히려 집값을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공공택지에 대한 분양가격 공시정보 항목을 61개로 늘리면서 분양원개 공개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후 건설회사들의 주택 공급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집값과 전세가격이 폭등했다. 결국 2012년 공시정보를 12개로 줄이면서 분양원가 공개는 폐지됐다. 또 다시 과거의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원가공개의 확대로 건설업계는 의외의 비용 지출로 인한 원가 상승의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건설사들은 공시 항목이 늘어나면서 이를 공시하기 위한 용역을 발주하는 등 채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용역발주는 고스란히 비용으로 처리되는 만큼 비용상승은 물론이고 사업지연으로 인한 기간 역시 비용으로 산정될 수 밖에 없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도급시공을 하는 건설사들은 크게 상관없겠지만 오히려 시행사들은 이윤까지 밝혀야 하는 만큼 머리가 아플 것”이라며 “ 때문에 원가 산정을 위한 외부 용역을 주는 곳들이 늘고 있어 그 비용 등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장경제의 원칙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로 그밖의 공사비 항목이 일반관리비와 이윤으로 확대되면서 시행주체는 이윤까지 밝혀야 한다.
어떤 제품이든 가격은 시장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게 정상인 상황에서 이윤까지 밝힐 경우 향후 소비자나 업계 내의 갈등 유발 원인이 될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공시항목 확대안을 내놓으면서 정작 공사명이나 항목에 대한 용어 정리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자료를 보게 되는 국민들을 고려하지 못한 면이 있는데 조만간 용어집을 만들 예정”이라면서 “건설 업무 종사자들은 저 항목들을 다 아는 상황이라 미처 살피지 못한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