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보고서]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 “이투데이 기획, 회생기업 조망 의미 깊다”

입력 2019-04-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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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채무자 모두 이롭게 하는 게 회생절차의 본질…긍정적인 면 더 부각했으면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은 이투데이의 ‘기업회생 보고서’ 시리즈 기사에 대해 “기업회생을 통해 밝아진 기업의 미래를 조망해 보는 의미 있는 기획”이라며 “회생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이란 기자 photoeran@
“회생법원장으로서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은 좀 서운(?)하네요.”

정형식(58) 서울회생법원장에게 이투데이가 연재하고 있는 ‘기업회생 보고서’에 대한 감상을 묻자, 미소를 띠며 돌아온 답변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수라장’이란 기획 ‘편집자 주’에서 회생법원에 대한 첫인상으로 제시한 용어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소란스러운 상황을 상징한다.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제3별관 4층 법원장실에서 정 법원장을 만났다. 그는 연신 부드러운 미소를 띠다가도, 무거운 질문에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책상에 올려둔 안경이 마치 실마리라도 되는 것마냥 이따금씩 들어올리기도 했다. 새하얀 그의 눈썹 사이 찌푸린 주름에서 법원장으로서 짊어지고 있는 고뇌가 묻어났다.

◇ ‘성실하지만 운 없는 기업’이 도산으로… “기촉법 논의 서둘러야” = 정 법원장이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에 아쉬움을 드러낸 것처럼 그는 회생법원과 회생절차에 들어선 기업, 개인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는 “(기업회생 보고서가) 회생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기업회생을 통해 밝아진 미래를 조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면은 정 법원장이 회생법원을 찾는 기업과 개인들을 ‘성실하지만 운이 없는 경우’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한 기업이 도산 절차에 들어가는 게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다”라며 “경제적인 흐름이나 정부의 정책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나 개인이나 빚을 지고, 기업에서 유동성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일상다반사”라고도 덧붙였다.

정 법원장이 이런 생각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그에게는 채권자와 채무자에게 모두 좋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회생절차의 본질이다.

이런 점에서 그에게는 한 기업이 ‘골든 타임’을 놓쳐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만큼 아쉬운 것이 없다. 정 법원장은 “기업이 회생절차가 필요하다고 보면 빨리 들어오는 게 좋다”며 “가치가 상당할 때, 아직 회사가 망가지기 전이면 살리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반면 “끝판에 들어오면 회생도 잘 안 된다”며 “파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과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로 넘어갔다.

정 법원장은 “기업들이 기촉법을 많이 이용하는 것은 결국 돈 문제 때문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돈이지만 회생법원에는 돈 주는 장치가 없다”며 “기업들은 (우선) 워크아웃으로 간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기업은 워크아웃에서도 실패한 경우, 회생을 위한 최후의 끈으로 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는 “경우에 따라 (워크아웃에서) 더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데, (그때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채무는 더 늘어나 있고, 회사는 더 망가져 있어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점들 때문에 기촉법과 통합도산법을 어떻게 하나로 할 수 있을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촉법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줄지어 부실화한 기업들을 효율적으로 구조조정하기 위해 2001년 ‘5년 한시법’으로 제정됐다. 이후 폐지와 연장, 제정을 이어가며 20여 년간 한시법 상태로 이어져왔다. 최근 금융위와 법원의 기촉법 관련 논의가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지난해 말 국회 정무위원회가 기촉법을 한시적으로 되살리면서 걸어둔 부대의견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금융위는 20대 국회 임기 안에 법원 등과의 논의를 거쳐 기촉법의 상시화 또는 통합도산법과의 일원화를 정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양측의 논의는 정지 상태다. 정 법원장은 “(기촉법 논의는) 금융위 주도로 하도록 돼 있지만, 별로 적극성을 띠는 것 같지가 않다”며 “지난해 12월 금융위에서 TF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하려 했지만, 구성 인원을 두고 법원행정처와의 이견 때문에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생법원은) 기촉법 상시화나 기촉법과 채무자회생법의 일원화나 어느 쪽이 채무자의 회생에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지 분석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며 “통합도산과 기촉법의 통합방안에 대해서도 서울회생법원 법관워크숍, 서울회생법원, 사단법인 도산법연구회, 사단법인 한국도산법학회 합동세미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부분은 기관 사이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채무자가 한계기업에서 정상기업으로 복귀하는 데 제도적 뒷받침을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한 해법을 찾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 “채무재조정 기능이 법원의 역할” = 정 법원장은 이어 회생에서의 법원과 금융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도 공유했다. 그는 “법원으로서는 회생기업이 최대한 빨리 절차를 마치고 정상기업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채무재조정 기능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패스트랙을 일례로 들었다. “종전에는 인가 후에도 상당 기간 회생기업이 법원의 관리를 받았다”며 “법원은 채무재조정 방법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있을지 몰라도 기업의 경영은 경영자가 법원보다 훨씬 더 전문가”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법원은 채무재조정에 집중해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빠른 종결로 그 후에는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 법원장이 생각하는 회생에서의 금융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회생기업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은 사고로 피가 부족한 환자에게 수혈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피가 부족한 환자에게 수혈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에 이르듯이 회생기업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이 없으면 회생기업이 되살아날 방도가 없다는 의미다.

또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오면 그 채권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기관으로서는 부실채권이 많으면 대손충당금 적립 문제 등으로 자산유동화 회사 등에 채권을 매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관행이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기업의 정상복원의 핵심 역할을 도맡아야 하는 회생법원 수장의 무게는 어떨까. 그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국내외의 여러 가지 이슈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 가계 부채의 급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인 채무자와 생산성 악화로 경영에 어려움이 많은 법인 채무자의 새 출발에 서울회생법원이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회생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묻자, 정 법원장은 “회생이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요술방망이”라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회생법원이 ‘아수라장’이라는 혼란통이 아닌, 희망의 ‘요술방망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곽진산 기자 jin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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