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연평어장에 ‘평화의 불빛’을 밝히다

입력 2019-04-30 17:51수정 2019-05-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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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칠흑 같은 바다에 빛이 없다면 그 여정은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할 것이다. 2000여 년 전 인간은 어두운 바다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기 위해 ‘등대’를 고안해 냈다. 그리고 2019년 5월 17일, 우리는 긴장이 가득했던 연평 바다에 남북 평화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다시 등대의 불빛을 밝힌다.

서해 연평 바다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에서 흘러온 민물이 해수와 섞이면서 조기, 청어 등의 산란장을 이루는 곳이다. 특히, 조기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동중국해에서 월동한 후 알을 낳기 위해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북상함에 따라 5~6월경 연평도 주변 해역에 거대한 어장이 형성됐다.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연평 바다 위에서 생선을 사고파는 해상 파시가 열릴 때면 조기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땠는지는 짐작하고 남는다.

이곳에서 고기잡이하는 어업인들은 연평도 주위에 산재한 암초를 피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1939년부터 줄기차게 등대 설치를 진정했다고 한다. 1959년 4월에 당시 교통부 해무청은 연평도 어선들의 안전한 항해를 돕기 위하여 등대 설치계획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60년 3월, 등대원이 거주하며 관리하는 유인 등대가 연평도에 설치되면서 비로소 등대가 불을 밝혔다.

당시 4명의 등대원은 순번을 정해 주ㆍ야간 교대로 근무했다. 등대가 격오지에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관사를 설치하여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했는데, 연평도 등대원들이 인근의 소청도, 선미도, 부도, 팔미도등대로 발령이 나면 가족과 함께 주기적으로 이사해야 하는 고생을 겪었다. 등대원들은 등대의 총책임자인 등대장의 지휘 아래 일몰에 등을 켜고 일출에는 불빛을 소등했다. 바다에 안개가 자욱할 때는 사이렌을 울려 인근 항행 선박들에 소리로 주의하라는 신호를 전달하였다. 매일 파도, 바람, 날씨 등의 바다 상태를 눈으로 관측하고 기록하여 기상청에 제공하는 일도 이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남북의 군사적 대치가 심화한 1974년, 군부대의 요청으로 연평도 등대의 불빛이 꺼졌고 1987년에는 시설물까지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1990년대 후반부터 남북교역이 늘면서 황해도 해주항을 오가던 우리 선박들의 안전항해를 지원하기 위해 연평도 등대 재점등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군사적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북 간 긴장이 계속된 지난 45년 동안 연평도 등대는 기약 없는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도,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 9·19 군사합의 등을 거치면서 서해가 긴장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에 맞춰 정부는 4월 1일부터 서해5도 어업인의 숙원이었던 어장 확대와 조업시간 연장을 결정한 바 있다. 이번에 확장된 어장의 면적은 여의도의 84배에 달하며, 1964년부터 금지되었던 야간 조업도 55년 만에 일출 전, 일몰 후 각 30분씩 1시간 허용되었다.

그리고 오는 5월 17일, 서해 5도 주변 수역에서 야간 어업활동을 재개하는 어업인들에게 안전한 바닷길을 안내하기 위하여 연평도 등대가 다시 불을 밝힌다. 지난 45년간 방치되다시피 하면서 낡고 훼손된 등대의 외관과 시설도 새 단장을 마쳤다. 다시 불을 밝힌 연평도 등대는 선박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안전의 빛’이면서, 동시에 서해의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는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남북 교역이 재개되고 남포 항로와 해주 항로가 열리면 북쪽으로 향하는 배들은 연평도 등대 앞바다를 지나야 한다. 연평도 등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과 북의 항구를 오가는 배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연평도 등대의 밝은 불빛이 이제 다시는 꺼지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바다를 영원히 비춰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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