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등의 보급으로 게임 의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건강을 해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임 장애를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자리매김시킴으로써 치료 연구와 환자 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게임업계의 콘텐츠 개발에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에 따르면 WHO는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B위원회에서 질병 명칭이나 증상을 나타내는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 최신 버전에 ‘게임 장애’를 추가했다. ICD는 세계 의료기관과 보험회사가 질병 지침으로 참조하고 있다.
WHO는 실생활에서 사망, 건강 위협의 주요 원인이 되는 새로운 현상들이 질병 분류 기준에 빠져있는 점을 고려해 2000년부터 ICD-10 개정 논의를 시작, 지난해 ICD-11 최종안을 만들었다.
WHO에 따르면 게임 장애 진단의 기준은 ◇게임을 하는 시간과 빈도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게임을 최우선으로 한다, ◇문제가 생기는데 계속 한다 등의 상태가 12개월 이상 지속돼 사회 생활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다. 게임 장애가 되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물건이나 사람에 부딪히는 문제가 나타난다고 한다.
WHO는 질병으로 진단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에 치료 연구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자 수 등 정확한 통계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서 각 나라와 지역의 상황 파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회사나 학교를 쉬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 보험사의 치료비 지급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각국 정부의 몫이다.
다만, WHO가 국제 질병으로 공식 인정함에 따라 게임회사의 콘텐츠 개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게임중독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의료기관이 적은 만큼 치료 시스템 정비도 과제다.
게임중독으로 건강과 사회 생활에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직 극히 일부로 보이지만, 게임중독은 각국에서 사회 문제가 되고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병적인 인터넷 의존이 의심되는 중고생은 93만 명으로 지난 5년간 두 배로 늘었고, 한국에서는 2002년에 과도한 게임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WHO의 이번 결정에 대해 게임 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ESA)를 비롯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유럽 한국 영국 등 각국 게임 산업 협회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WHO에 재검토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앞서 ESA의 스탠리 피에르 루이 부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오진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게임 장애 인증 철회를 요구했다.
의료계에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심리학자 앤소니 빈은 “WHO의 이번 결정은 시기 상조”라며 “자신이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게이머는 불안과 울증을 억제하기 위해 게임을 하기도 한다”며 “이를 해결하면 게임 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WHO 멤버인 의사 블라디미르 포즈니악은 “전 세계 수백 만 명의 게이머가 게임에 몰두하고 있어도 게임중독으로 진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체적인 유병률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임상 진단은 제대로 훈련된 의료 종사자만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