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후배와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뭐야. 그럼 선배는 머리가 좋은 게 아니네요.”
부들부들.... 이럴 때 “아니야! 나 머리 좋아!”하고 우겨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기자의 지능의 우수성을 증명해보기로 결심했다. 기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딱 알맞은 시험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멘사테스트’다.
◇멘사(MENSA)와 멘사테스트란?
멘사는 지적능력 상위 2% 안에 드는 이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국제단체다. 1946년 영국에서 설립됐으며 차차 세계 각국으로 확장돼 현재는 100여개 국가에 멘사가 설립돼 있다. 한국에서의 멘사테스트는 1996년 처음 실시됐고, 1998년 멘사코리아의 창립총회가 개최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멘사의 회원은 ‘멘산’이라 부른다. 멘산이 되려면 반드시 입회 시험인 멘사테스트를 거쳐 상위 2% 안에 들어야만 가입 자격이 주어진다. 이는 당해 시험을 응시하는 이들 중 상대 평가로 2%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류 기준으로 상위 2% 안에 드는 지능지수를 의미한다. 가입 후에는 일정 연회비를 내야만 활동할 수 있다.
국내에서 멘사테스트는 4만4000원의 응시료를 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재응시는 1년이 지나야만 가능하며 1인당 3회까지만 응시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이는 매번 같은 문제가 재출제되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보게 되면 문제를 기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멘사코리아는 문제 유출에 관한 보안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다.
단, 고등학교 이하의 교육기관 재학자는 응시할 수가 없다. 옛날에 ‘중학생의 나이에 이미 멘사에 가입했던 ◯◯ 씨는…’이라는 미사여구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의아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다.
과거 멘사코리아의 멘사테스트 제한 연령은 만 14세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교육 열기로 ‘멘사테스트 학원’이 생겨나는 등의 부작용이 벌어지게 됐다. 이에 멘사테스트가 사교육 경쟁을 조장하게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2017년부터 멘사코리아 측이 제한 나이를 만 19세로 상향했다고 한다. 참으로 ‘한국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국가에 소재한 멘사의 경우 테스트 자격을 1~2세 이상으로 두고 있는 경우도 많다. 멘사는 국제단체라서 세계 어느 국가에서 ‘멘산’ 자격을 획득했더라도 똑같은 회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어린 나이에 멘사 자격이 너무나 획득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다른 나라에서 시험을 통과해 ‘멘산’이 된 후, 멘사코리아로 회원자격을 이관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멘사테스트, 직접 응시하러 가보니
기자는 6월 1일 서울에서 열린 멘사테스트에 참가했다. 멘사코리아의 서울 사무실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양재시민의숲역 인근 주택가에 있다. 큰길가로 가다 보면 사무실 위치에 어린이집이 하나 나오는데 당황하지 말고 길을 돌아 이 건물 뒤편으로 가면 5층에 멘사코리아 사무실이 나온다.
고사장에는 신분증과 수험표를 지참해야 한다. 수험표를 지참하지 못했을 시에는 스마트폰으로 멘사코리아 홈페이지에 접속해 접수신청을 확인하면 된다. 다만 이 경우 답안지를 받은 뒤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기자처럼 손에 수험번호를 적어야 한다.
멘사코리아에서 ‘4만4000원짜리 기념품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해주는 컴퓨터용 사인펜과 시험지, 그리고 답안지만을 책상 위에 둘 수 있다. 전자시계와 아날로그시계를 불문하고 손목시계의 사용이 금지되며, 시험 시간은 고사장 정면 스크린에 띄워주는 스톱워치만을 참고할 수 있다.
시험지는 재사용되기 때문에 시험지에 필기나 낙서 등은 일체 금지된다. 시험지는 A형과 B형을 나뉘어 바로 옆에 앉은 사람과 다른 유형을 받기 때문에 타인의 답안을 훔쳐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험은 1차 시험 오후 2시 30분, 2차 시험 오후 4시 30분 중 하나의 시간에 배정된다. 시험 시간은 접수 순서에 따라 선착순으로 배정한다. 멘사코리아에 따르면 서울 테스트를 기준으로 테스트마다 192명 안팎의 인원이 응시한다고 한다.
테스트와 멘사에 대한 여러 설명이 끝나면 시험이 진행된다. 시험은 20분간 진행되며 45문항이 출제된다. 멘사테스트는 비언어적 시험이다. 8가지의 도형을 제시하고, 도형들의 패턴으로부터 마지막 9번째 빈칸에 들어갈 도형을 보기에 나온 6개 도형 중 하나로 고르면 된다. 이 유형 한 가지로만 문제가 구성돼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 말로 설명돼 있다 한들 풀이 방식만큼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한 연산이나 표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지에 필기가 제한되는 규정이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다.
문항 당 26초의 시간이 주어지는 셈. 직접 풀어본 결과 넉넉한 시간 여유를 가지려면 ‘특정 문항에 지체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앞 문제는 쉽고 뒷 문제는 어렵게 구성되어 있다. 난이도가 점진적으로 늘기 때문에 사람마다 몇 번 문제인가부터 ‘답을 잘 모르겠는 지점’이 온다. 어쩌면 합격자들의 경우엔 문제 끝까지 이런 지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기자의 경우 30번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끝까지 모르겠는 문제가 있다면 오답에 대한 감점이 없기 때문에 찍어서라도 답안을 내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왜 멘사테스트를 볼까?
옛날엔 ‘멘사 회원’이라는 말이 지금보다 훨씬 위상이 높았던 때가 있었다. 우선 상위 2%의 지능을 가진 것이 증명된 이라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멘산의 수가 훨씬 희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멘사’나 ‘멘사 회원’으로 검색하면 뉴스에 ‘연예인 누구누구도 멘사 회원이라더라’라는 이야기가 넘쳐날 만큼, 멘산의 수가 많아졌다. ‘범접할 수 없는 천재’정도의 느낌에서 ‘꽤 머리가 좋은 사람’ 정도의 느낌으로 다소 하향 조정됐다고 할까? 그런데도 멘산이 되고자 멘사테스트를 보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기자가 시험을 본 날엔 20대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응시자가 대다수였다. 멘사코리아는 평소 멘사테스트의 응시 연령대 역시 이날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인터뷰한 응시자들은 대체로 ‘그냥 재미 삼아’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멘사 회원이 되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액세서리 정도의 느낌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여대생 A 씨는 “멘사에서 발급해준다는 카드가 예뻐 보여서 응시했다”라는 특이한 이유를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4만4000원짜리 예쁜 카드를 갖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27세 직장인 B 씨는 “옛날에 IQ가 140정도로 나왔었는데, 지금 IQ가 어떤지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시험을 보게 됐다”라고 응시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응시자들의 목적 중 하나는 멘사 내 친목 활동에 있었다. 30세 남성 C 씨는 “정말 단순히 재미 삼아 한 번 와 봤다”면서 “멘사라는 단체에 대해 호기심도 조금 있고, 나중에 가입하게 된다면 멘사 내 커뮤니티 활동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2세 여성 D 씨는 “멘사에 가입하면 멘사 관련 굿즈들도 가질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갖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보드게임이나 봉사활동 등을 같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끌렸던 요소”라고 덧붙였다.
사실 멘사의 본질은 친목 단체다. 일단 단체가 특별히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같은 것이 없다. 라틴어로 탁상을 뜻하는 ‘멘사(MENSA)’라는 이름부터 탁상에 둘러앉아 친목 도모를 표방하는 단체의 정체성이 잘 나타나 있다.
멘사 내에는 ‘시그(SIGㆍSpecial Interest Group)'라는 이름의 내부 동호회가 여러 개 존재한다. 리그오브레전드나 하스스톤같은 게임에서부터 축구나 등산같은 운동 등 관심 분야에 따라 적절한 시그를 골라 친목 활동을 할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멘사는 친목 도모가 주 목적인 단체기 때문에, 단체 내 소규모 친목회 개념인 시그야말로 멘사라는 단체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해도 무리가 없겠다.
멘사 회원이라는 증빙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대는 지났다. 또 애초에 단체의 존재 목적부터도 그런 증빙을 주 목적으로 표방하고 있지 않다.
우리 사회에선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혹은 특정 대학에 재학하는 사람이라는 특성을 공유하는 어떤 집단에서 이런저런 친목 모임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멘사는 단지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특성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친목을 갖기 위해 결성된 모임인 것이다.
멘사코리아는 멘사테스트에서 혹시 탈락한 응시자가 1년 후 재응시하더라도 90%가량 일치하는 수준의 비슷한 성적이 나온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회원들이 ‘지능이 높다’는 특성을 공유한다는 것 만큼은 신뢰할 만하다.
그렇다면 테스트에 응시한 기자는 어떻게 됐을까? 모른다. 테스트는 보통 9일 뒤에 온라인으로 결과가 공개되기 때문에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떨어지면 뭐, ‘지능이 중간 정도 되는’ 사람들이랑 친목 도모하면 되니까… 괜찮을 거다…. 정말 괜찮다…. 4만4000원짜리 사인펜도 받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