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피렐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이듬해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제작비로 150만 달러(약 17억8000만 원)를 쓴 이 영화는 5200만 달러(약 616억 원)를 벌어들여 셰익스피어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무명이었던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은 이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제피렐리는 이후 ‘햄릿’, ‘제인 에어’, ‘티 위드 무솔리니’, ‘나사렛 예수’, ‘끝없는 사랑’, 등 영화 약 스무 편과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토스카’ 등 여러 편의 오페라를 연출하며 거장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문화 예술 분야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4년 이탈리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의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1923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제피렐리는 유년기부터 문화 예술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8~9살 때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를 보고 오페라에 대한 꿈을 키웠고, 플로렌스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극장 설계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을 피렌체로 이주한 영국인들과 보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통역병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제피렐리는 배우로도 짧게 활동했고,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운영하는 극단에 들어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와 ‘트로일루스와 크리세’ 같은 연극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비스콘티 감독의 ‘흔들리는 대지’의 조연출로도 참여했다.
그는 오페라 영화에도 열정을 쏟았다. 특히 1983년 소프라노 테리사 스트라타스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출연한 영화 ‘라 트라비아타’는 평단의 환호를 받으며 오스카상 3개 부문 수상자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다작으로 유명했던 그는 오는 21일 베로나 아레나에 오르는 ‘라 트라비아타’를 위해 최근까지도 분주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영화와 예술, 미(美)의 이탈리아 대사였다“며 그를 추모했다. 제피렐리재단 홈페이지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잘 가요, 거장(Ciao Maestro)’이라는 문구가 올라왔다.
장례식 일정과 장소는 아직 발표 전이지만 AFP통신은 피렌체의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수도원 묘지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