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한은 독립성 논란..이명박·박근혜 정부부터 이어져온 한은 불신의 역사
“홍남기발 척하면 척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금리인하를 용인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
12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창립 제69주년 기념사에서 사실상 금리인하를 시사하고, 곧이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를 반색하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나온 채권시장의 반응이다. 불과 2주일만에 180도 입장을 선회한 이 총재를 두고 채권시장은 청와대나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라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날 이후 채권시장은 한은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랠리를 펼치고 있다. 연내 두 번의 인하까지도 가능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실제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는 국고채 3년물의 경우 12일 당일에만 7.3bp(1bp=0.01%포인트)나 떨어지며 1.50%를 밑돈 1.469%를 기록했다.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를 타깃으로 하는 기준금리가 1.75%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은이 한 번(25bp)의 금리인하를 해도 더 낮은 금리다.
다만 한은 독립성 논란이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은 한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휘둘린 한은의 흑역사는 쉽게 지워지기 힘든 낙인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그 해결책도 이미 알고 있다. 이 총재는 12일 창립 기념사에서 임직원들을 향해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소위 ‘뉴 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높여가기 위해서는 외부와 적극 소통하는 한편 전문성을 강화해 정책역량을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언론 노출과 대외 인사들과의 접촉을 꺼려 ‘은둔 주열’이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는 이 총재 스스로부터 곱씹어야할 대목이다.
◇2014년 최경환 “척하면 척” 데자뷰 = 12일 이 총재는 창립 기념사에서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그 전개추이와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면서 “(통화정책은)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이와 관련해 연합인포맥스는 홍 부총리가 “통화정책의 완화적 기조로 가는 데 접근하고 있다”며 “상황변화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말을 준 게 완화적 기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진전되게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총재는 지난달 31일 열린 5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과, 이달 3일 한은이 주최한 국제컨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까지만 해도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해 금리인하에 명확히 선을 그었었다.
2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것은 지난달말이나 이달 초중순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사이 이벤트(사건)가 있었다면 7일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성장세 하방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했고, 10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확장 재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홍 부총리와 이 총재는 7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6월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및 ‘한중일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키 위해 동반 출국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은 2014년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2014년 4월 취임한 이 총재는 취임 직후 줄 곧 기준금리의 향후 방향성은 인상임을 밝혔었다. 이후 그해 7월 당시 박근혜 정부 실세로 불리던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입장을 선회한다.
빚내서 집을 사라는 소위 초이노믹스(최경환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에 발맞춰 그해만 해도 8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그해 두 번째 금리인하가 있기 직전인 9월말 호주에서 최 부총리와 이 총재간 저녁 와인회동 후 최 부총리로부터 그 유명한 “척하면 척”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까지 완화된 탓에 금리인하는 가계부채 급증의 최소한 공범이 됐다. 현재까지도 가계부채발 금융불균형 문제는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중이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독립성 논란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들어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한은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기준금리를 5.25%에서 2.00%까지 낮췄다. 2008년 10월엔 25bp 금리인하 이후 임시 금통위를 열고 75bp 금리인하를 단행하기도 했었다.
당시 한은 총재였던 이성태 총재는 이를 회고하면서 “그렇게까지 낮출 필요는 없었다”며 참회록을 써야한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전 장관이 회고록을 통해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은으로 하여금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하게 했고,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도 자신의 공이라고 평가한 대목이 알려진 직후, 당시 한은 총재였던 이성태 총재가 회고록이라도 써 이를 반박해야 한다는 한은 안팎의 목소리가 커질때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이성태 총재 후임으로 김중수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임명했다. 그는 취임 전부터 “한은도 정부”라는 말을 공언했고,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골자로 한 이명박 정부의 747경제정책(7%성장, 소득 4만불, 경제 세계 7위 대국)의 핵심 입안자임을 자처했던 인물이다.
이런 김 총재를 못미더워했는지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0월부터 기획재정부로 하여금 열석발언권을 행사케 했다. 열석발언권이란 기재부 차관 등이 금통위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말한다. 1999년 6월 이후 10여년 넘게 행사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됐었다. 사실상 금통위를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키 위한 조치로, 열석발언권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2013년 2월)직후인 2013년 4월까지 계속됐다.
2010년 4월24일 박봉흠 금통위원 퇴임 직후 2년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추천 몫이던 금통위원을 추천하지 않는 등 금통위를 파행으로 치닫게도 했다. 당시 국회에서는 대한상의 회장을 불러 왜 금통위원을 추천하지 않느냐 따져 묻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상의 회장이 “청와대에서 정해주지 않아서”라고 답한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그 후유증으로 당연직인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하고 5명인 금통위원 중 무려 4명의 금통위원이 최근까지도 한꺼번에 교체되고 있다. 금통위 위원회의 연속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에도 당시 여당 대표였던 이한구 대표는 김중수 총재를 향해 “청개구리”니 “나무늘보”니 하며 금리인하를 대놓고 압박했다. 당시 김 총재의 반발로 2013년 4월 금통위에서는 4대 3으로 의견이 팽팽히 갈리며 금리가 동결되기도 했었다. 물론 김 총재의 반발은 불과 한 달을 가지 못했고, 그해 5월 금리인하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라도 금통위가 4대 3으로 의견이 팽팽했던 때는 2001년 6월 금리인하 이후 처음이다.
이주열 총재 ‘척하면 척’ 사건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은 계속된다. 지난해 10월 KBS 보도에 따르면 2015년 3월 한은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대로 인하하기 직전 강효상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자유한국당 의원)과 정찬우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간 문자 메시지를 통해 권언유착을 통한 금리인하 압박이 이뤄진 정황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은을 출입하고 있던 기자도 당시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서 “이건 청와대의 뜻”이라며 심각히 받아들였던 한은 직원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