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6월 추천 가볼 만한 곳
남들도 다 가는 평범한 방식의 여행은 이제 지겹다.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산 넘고 물 건너는 것은 물론, 섬과 섬 사이를 넘는 거다. 자동차를 타고 한반도 끝까지 달려가는 여행은 '인싸'(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아웃사이더와는 다르게 무리에 잘 섞여 노는 이를 가리키는 말)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여행 방식이다.
◇ 부산 끝 섬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 여행, 가덕도 = 가덕도는 부산 서남단 끝에 위치한다. 가덕대교를 건너 섬 북쪽에서 진입한다. 2010년 가덕대교가 개통하기 전에는 부산신항만 쪽 녹산선착장에서 뱃길로 오갔다. 가덕도 서쪽은 거제도다. 같은 해 개통한 가덕해저터널, 거가대교가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다. 덕분에 부산 시내에서 가덕도를 지나 거제도까지 차로 오갈 수 있다.
가덕대교와 거가대교가 생긴 후 가덕도를 찾는 이가 늘었다. 개통 초기에는 부산과 거제를 잇는 경유 섬이었으나, 9년 정도 지나니 가덕도의 매력이 발길을 잡는다. 특히 가덕도에는 러일전쟁과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새겨졌다. 천성항과 대항 등 서쪽 해안에 들어선 카페나 연대봉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빼어나다.
가덕도 여행은 외양포에서 출발한다. 외양포는 러일전쟁 당시 일제가 민가 64호에 살던 주민을 퇴거시킨 뒤 군사기지로 쓴 마을이다. 광복 후에는 군사 보호구역이라 개발이 불가했다. 덕분에 당시 흔적이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다.
마을 초입 대항낚시 앞 삼거리 이정표는 포진지, 화약고, 병사, 사령관실 등 당시 흔적을 가리킨다. 대항낚시 역시 20세기 초에 헌병부가 있던 자리다. 삼거리에서 가덕해안로 쪽은 병사와 사령관실이 있었다. 지금도 마을 사람이 살고 있다. 형태가 긴 세월을 보여준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 지붕 모양이 다르다. 한 지붕 아래 몇 가구나 살았다. 광복 후에는 이주민이 들어왔다.
포진지도 남아 있다. 대항낚시에서 가덕해안로1325번길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온다. 관광안내소와 옛 화장실 터가 진입로 역할을 한다. 진지에는 두 개씩 짝을 이룬 280mm 유탄포 포좌 터와 탄약고, 포진지 엄폐 막사 등이 옛 군사기지를 짐작케 한다. 엄폐 막사는 반원 아치형 입구에 위쪽은 대나무로 위장했다. 광복 후에는 사람들이 집으로 사용해 온돌이나 아궁이 구조도 남아 있다. 건너편은 5~6m 높이 토성 형태로 제방을 쌓아 엄폐했다.
외양포를 돌아볼 때는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이 필수다. 설명을 들으면 마을이 간직한 이면의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주말과 공휴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포진지 앞 안내소에 상주한다.
외양포에서 나와 가덕도 동쪽 대항새바지로 향한다. 샛바람을 맞는다고 새바지다. 방파제를 따라 트릭 아트 벽화가 있다. 이곳도 2차 세계대전 말에 일제가 만든 요새 동굴이 있다. 방파제가 남쪽 야트막한 언덕 아래 입구가 세 개, 안쪽은 약 50m로 연결된 형태다. 동굴 반대편 출구 쪽은 한적한 몽돌 해변이다. 출구 없이 일제가 미군의 상륙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가로×세로 50cm 총안구 두 곳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한 곳이 출구가 됐다. 동굴은 강제징용 된 강원도 탄광 노동자들이 팠으며, 한동안 마을 사람들의 어구 창고로도 쓰였다.
대항새바지 북쪽으로 연대봉(459.4m) 일부가 보인다. 연대봉은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보통 지양곡주차장에서 출발해 정상까지 편도 40~50분이 걸린다. 부산의 대표 걷기 길인 갈맷길 5-2구간에 속한다. 마지막 구간이 제법 가파른데, 정상에 서면 후회하지 않는다. 발아래 대항새바지 전경이 또렷하고,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가덕해저터널, 대죽도 건너 거가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지상으로 나오는 도로가 새삼 신기하다.
가덕도에서 가덕대교를 넘기 전에는 정거마을에 들르자. 정거마을은 정거장마을로 여기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닻 정(碇)을 쓰는 정거마을은 배들이 닻을 내리고 풍랑을 피해 머물던 곳이다. 근래에는 소담한 벽화 마을로 알려졌다. 마을 동쪽 끝까지 약 300m 골목을 아기자기한 벽화가 장식한다.
골목이 끝나면 진우도와 마주한다. 부산신항만이 생기고 갯벌이 사라진 뒤, 마을 사람들은 굴 종패(씨조개) 양식을 한다. 가리비는 굴 종패에 쓰인다. 마을로 들어서는 도로 옆에도 가리비 껍데기가 작은 산을 이룬다.
가덕대교를 건너 부산 시내로 가는 길에 을숙도를 지난다. 을숙도의 떠오르는 명소는 지난해 6월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MoCA BUSAN)이다. 뉴미디어 아트를 포함한 동시대 미술, 자연과 생태를 주제로 전시한다. 식물학자 패트릭 블랑이 국내 자생하는 식물 175종을 식재한 '수직정원'이 건물 외벽을 푸르게 물들인다. 방문객이 미술관 밖에 오래 머무는 이유다.
◇ '별주부전'의 토끼와 거북을 만나다, 사천 비토섬 = 경남 사천시 서포면에 있는 비토섬에는 토끼와 거북,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있다. 비토섬은 날 비(飛), 토끼 토(兎)를 써서 '토끼가 날아오른 섬'이라는 뜻이다. 토끼가 달을 보고 뛰어올랐다는 월등도를 비롯해 토끼섬, 거북섬, 목섬 등이 이곳이 '별주부전'의 배경임을 자연스레 알려준다.
그런데 비토섬에서 만나는 토끼와 거북의 전설은 우리가 아는 내용과 조금 다르다. 토끼와 거북이 다시 뭍으로 나가는 때부터 상황이 급변한다. 토끼가 월등도 앞바다에 당도하자마자 육지인 줄 알고 뛰어내렸는데, 달빛에 반사된 월등도의 그림자였다. 결국 토끼는 바다에 빠져 죽었고, 토끼의 간을 얻지 못한 거북도 용왕을 볼 면목이 없어 노심초사하다가 자살한다. 토끼의 아내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토끼가 달을 보고 뛰어오른 곳은 월등도가 됐고, 월등도 주변에 토끼와 거북, 토끼 아내가 죽어 변한 토끼섬, 거북섬, 목섬이 전설을 증언하듯 남았다.
비토섬에 전하는 색다른 이야기를 만났으니, 이제 비토섬을 천천히 둘러보자. 곤양 IC에서 남쪽으로 서포면 소재지를 지나면 비토교와 거북교를 건너 비토섬에 들어선다. 비토교는 1992년 개통한 연륙교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삼천포항으로 배편이 운항했지만, 다리가 개통하면서 차로 사천과 삼천포를 오갔다고 한다.
먼저 월등도로 가자. 월등도 입구 하봉마을에는 토끼와 거북 조형물과 비토섬의 전설을 새긴 안내판이 있다. 월등도는 조수 간만의 차로 하루 두 번 길이 열리기 때문에 미리 물때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월등도에서 토끼섬 입구까지 도로와 해안 산책로가 이어지고, 현재 토끼섬에도 해안 산책로를 만들고 있다. 바다 쪽으로 토끼섬과 거북섬이 솟았고, 사천만 바다 건너편으로 사천의 진산인 와룡산이 보인다.
비토섬에는 비토해양낚시공원과 비토국민여가캠핑장이 있다. 별학도에 자리한 비토해양낚시공원은 혼합 밑밥 사용을 금지해 건전한 낚시 문화를 추구하는 유료 낚시터다. 해안 산책로에서는 사천만을 빠져나가는 너른 바다와 각산, 삼천포대교, 창선대교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토국민여가캠핑장은 자연주의 캠핑을 추구하는 곳이다. 캠핑장 내로 자동차를 가져갈 수 없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기 좋고, 주차장에서 캠핑장까지 카트로 짐을 날라준다. 이곳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갯벌이 펼쳐진 해안가와 인접하다. 빛 공해가 없어 밤하늘의 아름다움도 만끽할 수 있다. 조금 걸어 오르면 사천만 바다와 각산, 삼천포대교, 남해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나오고, 내려가면 너른 갯벌을 끼고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가 있다. 비토국민여가캠핑장에 묵으면 예약 인원 전원에게 제공하는 사천바다케이블카 할인권(1인당 5000원)도 꼭 챙기자.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사천 여행의 메카다. 섬과 바다, 산을 잇는 특별한 케이블카로 세 개 정류장이 있다. 삼천포대교 입구에 있는 대방정류장을 중심으로 초양정류장까지는 바다 구간, 대방정류장에서 각산정류장까지는 산 구간이다. 케이블카는 대방-초양-대방-각산-대방정류장 순서로 운행한다. 선로 길이 2.43km, 왕복 20분 이상 걸린다. 캐빈 45대가 운행하며, 그중 15대는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이다. 바닥과 측면이 이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투명한 부분이 넓어, 여느 해상케이블카보다 스릴이 넘친다.
각산정류장에서 2층으로 나가면 각산전망대로 오르는 길이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잠깐 오르면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등 창선도와 남해도를 잇는 다리의 향연이 펼쳐지고, 남해 금산과 망운산이 바다 위로 볼록하다.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비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대방정류장 매표소 2층 매점에서 '토끼와자라빵'도 맛보자.
대방진굴항(경남문화재자료 93호)은 고려 시대에 설치한 군항 시설로, 지금의 모습은 1820년경 완공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군 기지로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원형으로 길게 이어진 굴항을 따라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 노거수가 늘어섰다. 특히 계단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는 7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한다.
대방진굴항에서 약 5km 거리에 남일대해수욕장이 있다. 이곳에는 거대한 코끼리가 바닷물을 들이켜는 듯 보이는 코끼리바위가 유명하다. 해변 왼쪽은 해안도로를 따라 코끼리바위까지 산책할 수 있고, 오른쪽은 코끼리바위 전경을 담기 좋다.
사천 여행 마무리는 실안해안도로가 제격이다. 모충공원을 지나며 시작하는 도로는 사천만 해안을 따라 삼천포대교 아래까지 6km 남짓 이어진다.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카페와 숙박 시설이 많고, 사천8경에 드는 ‘실안낙조’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