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 사건의 '부실 수사' 논란과 관련해 수사 과정에서 미흡하다는 경찰 자체 조사 결과가 나왔다. 현장 보존과 압수수색 등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진상조사팀은 최근 수사국에 이런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
진상조사팀은 부실 수사 논란이 불거진 이후 2일부터 제주에서 제주 동부경찰서 형사과와 여성청소년과, 감식과를 담당한 경찰을 상대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진상조사팀은 우선 현장 보존이 미흡했다고 판단했다. 고유정은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6) 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 경찰통제선을 설치하지 않았고, 펜션 주인은 경찰의 동의로 범행 현장을 청소하기도 했다. 범행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방 청소로 인해 증거가 사라졌다거나 수사에 차질을 빚은 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도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남아있을 수 있는 범행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진상조사팀은 고유정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할 당시 졸피뎀 관련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한 경위도 조사했다.
수사팀은 지난달 1일 고유정을 긴급체포하면서 주거지 압수수색을 벌여 혈흔이 묻은 칼 등 범행 도구를 발견했다. 하지만 졸피뎀 약봉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고유정의 현 남편이 졸피뎀 약봉지를 발견했다. 그는 고유정의 파우치(작은 주머니)에서 졸피뎀 약 성분이 적힌 약봉지를 확인하고 경찰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수사팀은 이미 주요 범행도구를 발견하고 고유정의 자백까지 받아낸 상황에서 주거지를 샅샅이 수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법원이 발주한 영장에는 압수수색 대상의 범위가 극도로 제한돼있어 증거물 확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한계로 남는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떠나 계획적 살인의 결정적 증거인 졸피뎀 약봉지를 확보하지 못한 데는 문제가 있다고 진상조사팀은 판단했다.
다만 범행 현장 인근 폐쇄회로(CC) TV 미확보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전 남편 강씨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이뤄진 5월 27일 사건 현장을 찾았지만, 인근에 설치된 CCTV 위치만을 확인했을 뿐 즉각 CCTV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이 마을 어귀 방범용 CCTV를 확보해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신고 이튿날인 5월 28일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