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한일 양국 경제는 상호 의존적인 구조다. 일본 정부가 보복조치를 취하면 한국 경제의 피해가 다시 일본 경제 피해를 낳는 연쇄반응이 나타난다. 자유무역 체제하에서 경제보복은 범죄나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일본 경제보복의 부당성을 강력하게 제기해야 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자유무역의 혜택으로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나라다. 그런 나라가 자유무역 원칙을 위반하는 자기부정 행위를 하고 있다. 한편 한국 경제에 대한 보복은 한일 양국 경제에 피해를 입히는 대신 중국 경제에 어부지리를 제공한다.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도발을 유발해 일본의 안보에도 타격을 준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설득해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사 파견, 한미 공조 등 특단의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는 일본 경제를 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난 50년간 고속성장을 했으나 가마우지 경제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물고기를 잡으면 목이 묶여 주인에게 빼앗기는 가마우지 신세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이 소재와 부품을 수입해 중간재나 완성품을 생산해 팔면 이익의 큰 몫을 일본 기업들이 차지했다. 우리 경제는 조선, 유화, 자동차, 반도체 등 주력산업이 줄줄이 국제경쟁력을 잃는 위기를 겪고 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3D프린터, 빅데이터, 로봇,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을 서둘러야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고 일자리를 만드는 상황을 맞았다. 차제에 첨단과학과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일본 의존의 산업구조를 탈피하고 미래 지향적인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세계경제가 보이지 않는 무역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특히 지난해부터 미중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후 생존력을 잃으면 희생물로 전락하는 양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은 일부 산업의 부품 공급만 제한해도 휘청거리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냈다. 새로운 산업발전을 이끌어야 할 기업들이 추락의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S&P가 한국 대기업의 신용도가 당분간 부정적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분석했다. 머지않아 한국 대표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낮추겠다는 경고다. 올 1분기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1년 전에 비해 40%나 감소했다. 이 중 30개 기업은 유동자산에 비해 유동부채가 많다. 빚이 아니면 연명이 어렵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경제 불안을 확산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노동제도의 경직화 등의 정책들을 무리하게 펴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기업투자가 감소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영업과 중소기업에 피해를 집중해 실업난과 사회양극화를 가중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확산하고 일본의 경제보복이 본격화해 주요 기업들이 무너질 경우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2.9%로 억제했으나 기존의 정책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은 유지하기로 했다. 우리 경제는 단순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는 경제정책을 신산업 발전과 투자 활성화 우선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분발해 경제구조 혁신과 자립을 서두르고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