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자료에 보수 구체적 명시 안해...대의원 대다수가 ‘깜깜이 승인’
박준식 관악농협조합장이 ‘관례’라는 명분으로 대의원회의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실제 대의원회의 안건과 다른 내용을 회의록에 올려 자신의 성과급을 인상하거나 친분이 있는 사외이사를 거수로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대의원회의 안건을 심사하는 이사회의 90%를 자신의 지인으로 꾸려 이사회를 유명무실한 존재로 만들었다.
11일 이투데이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관악농협 정기대의원회의 자료와 회의록을 입수했다. 박 조합장은 정기대의원회의 자료에는 기재하지 않았던 월 기본 실비(보수)와 관리 성과급 관련 사항을 대의원회 의결을 받은 것처럼 회의록에 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의원회의록 ‘위조’로 보수ㆍ성과급 셀프 인상… “백지수표와 똑같다” = 박 조합장은 수년간 정기대의원회의 회의록을 위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조합장을 지지하는 대의원들은 그동안 박 조합장의 구체적인 보수 및 판공비를 알지 못한 채 임원 보수 안건을 의결했다. 2018년 1월 정기대의원회의 자료에는 임원보수 및 실비변상규약 개정에 관한 사항이 담겼다. 개정 내용에는 구체적인 금액이 명시되지 않은 채, ‘통상임금기준 2.65% 반영’이라고만 적혀 있다. 당시 박 조합장과 친분이 있는 대다수 대의원들은 박 조합장의 보수가 얼마인지 모른 채 해당 사항을 승인했다.
하지만 대의원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대의원회의록에는 별표 <3, 4>라고 표시된 문서가 추가로 올라갔다. 별표 자료에는 비상임조합장 월 기본 실비와 관리 성과급 지급액 표가 포함됐다. 별표 자료에 따르면 박준식 조합장의 월 기본 보수는 843만 원, 관리 성과급은 ‘기본 연봉의 60% 이내’라고 명시돼 있다.
당시 대의원회의에 참석했던 관악농협 대의원 이상철(가명) 씨는 “얼마에서 2.65%가 올랐는지도 모르는 임원보수 개정안이 대의원회의에 올라왔는데, 이건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것”이라면서 “대의원 대부분이 박 조합장의 측근이라 소수 대의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해당 안건은 대의원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회의록 위조를 통한 보수ㆍ성과급 인상은 2017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2017년도 정기대의원회의 의안에는 박 조합장의 구체적인 보수가 명시되지 않고, ‘통상임금기준 2% 반영’이라고만 적혀 있다. 하지만 대의원회의록에는 별도 문서가 따로 첨부됐다. 이렇게 박 조합장은 월 기본 보수 822만 원을 받았다.
대의원회의에 실제 상정된 안건과 다른 안건을 첨부한 뒤 실제 해당 안건도 대의원회의에서 의결을 받은 것처럼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농협법 제35조 총회의의결사항 조항은 임원의 보수 및 실비 변상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 조합장 “관례에 따랐을 뿐”… 회의록 위조 의혹 부인 = 박 조합장은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수년간 대의원회의 자료와 회의록을 다르게 기록해온 것에 대해 “관례에 따라 다 그렇게 해왔던 것”이라면서 “과거에도 다 그렇게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박 조합장은 관악농협 사외이사 선출 당시에도 대의원회의록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8년도 1월 열린 정기대의원회 의안으로는 ‘사외이사 선출안’이 함께 올라왔다. 박 조합장은 당시 알고 지내던 김모 씨를 사외이사로 추천했고, 대의원들의 거수로 김 씨를 사외이사로 임명했다.
지역농업협동조합정관례 제78조 선거 방법에 따르면 조합원이 아닌 이사(사외이사)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 조합장은 투표 대신 거수로 김 씨의 사외이사 선출안을 통과시켰고, 대의원회의록에는 “선거관리위원장은 선거를 마친 후 투표용지의 매수 및 투표함의 봉인 상태 등을 확인한 후 개표를 진행한다”는 내용이 올라갔다.
현 대의원 소영호(가명) 씨는 이 같은 회의록 위조가 불법에 해당됨을 인지하고, 올해 2월 농협중앙회 감사팀 서울지역본부에 감사를 요청했다. 이후 소 씨는 5월 관악농협 본점에 감사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했지만, 관악농협 관계자로부터 “농협중앙회가 주의하라는 경고조치를 내렸다”는 말만 듣고, 구체적인 감사 결과는 받지 못했다.
소 씨는 “내 요청으로 감사가 시작됐는데 요청자가 그 결과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관악농협 관계자는 감사 결과에 대해 계속 우물우물하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상철 씨는 “당시 박 조합장이 김 씨의 사외이사 임명에 찬성하냐고 구두로 묻자 제일 앞에 있던 대의원이 ‘찬성입니다’를 외쳤고, 그 뒤에 있는 대의원들이 차례로 ‘찬성합니다’를 외치면서 회의가 끝났다”면서 “누가 찬성하고 반대하는지 다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거수를 하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었겠냐”고 말했다.
◇이사회 ‘10명 중 9명’ 박 조합장 지인… 안건 심사 ‘프리패스’? = 관악농협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10명 중 9명이 박 조합장의 지인으로 드러났다. 관악농협 이사회는 조합장, 상임이사, 상임감사, 비상임감사, 사외이사 2명, 비상임이사 7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상임이사와 상임감사, 사외이사는 조합장이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이외에 비상임이사 7명 중 6명은 박 조합장이 거주하는 독산동 선후배 사이이거나 초등학교 동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 조합장의 동네 선배인 비상임이사 심민철(가명) 씨가 유일하게 박 조합장의 반대편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악농협 이사회는 13명의 이사가 대의원회의에 올라갈 안건을 심사한다. 해당 안건의 사업적 타당성이나 실현 가능성, 관악농협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들을 살핀다.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 안건은 대의원회의 의결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사회 심사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 관문이다.
전 비상임이사 유용진(가명) 씨는 “이사회는 대의원회의에 올라가는 안건을 제일 먼저 심사하고, 그 안건의 타당성을 살펴보는 가장 중요한 단계인데 사실상 박 조합장이 올리는 모든 안건이 ‘프리패스’가 되고 있다”면서 “이사회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