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8일부터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 2차 수출규제 조치의 시행에 들어갔다. 사실상 한국 산업 전반을 겨냥한 경제보복이다. 일본 기업들의 한국에 대한 수출절차가 대폭 강화됐다. 일본에서 부품·소재·장비 등을 조달하는 국내 산업계가 언제 수입과 생산 차질이 빚어질지 모르는 심각한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이번 조치로 일본의 수출통제 가능품목 1194개 가운데 군사용 민감물자 263개를 뺀 비민감품목 857개와 비전략물자 74개 등 931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절차가 그동안의 일반포괄수출허가에서 개별허가, 또는 특별일반포괄허가 방식으로 바뀌었다. 일반포괄허가는 처리기간 1주일 이내에, 한 번 허가받으면 유효기간이 3년이다. 그런데 개별허가는 수출 건별로 최대 90일의 심사기간이 걸리고 유효기간도 6개월에 불과하다. 비전략물자도 ‘상황허가’ 대상이다.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모든 품목의 수출을 일본이 임의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 수출업체가 ‘자율준수(ICP)기업’으로 인증받은 경우 우리 수입업체가 일반포괄허가와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절차 또한 몹시 까다롭고, 일부 대기업들만 해당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9개 품목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사용량이 적거나 수입대체가 가능한 것 말고,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이다. 이미 1차 수출규제로 취약성이 가장 크게 노출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외에도, 2차 전지와 자동차, 기계, 정밀화학 등 우리 주력 산업이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단기간 내 수입대체가 힘든 중간재들이 집중된 까닭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어디까지 확산될 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처럼,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주요 품목의 한국 수출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산업계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분야 연구개발(R&D) 지원책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28일에도 핵심품목 100개 이상에 대한 R&D 투자에 2022년까지 5조 원을 투자하고, 예산의 신속 집행 시스템을 갖추는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우리 경제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도 일본의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경제보복의 철회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한·일 간 대립은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으로만 치닫고 외교적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경제와 첨단산업 기술의 자립은 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로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생산 차질을 막는 데 전방위로 뛰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아직 극일(克日)은 구호에 머물러 있고, 다급한 산업계의 위기를 타개할 현실적 대책이 없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