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나라살림을 사상 최대인 513조5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469조9000억 원)보다 9.3% 늘어난 규모다. 정부는 29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2020년 예산안’을 확정하고 다음 달 3일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예산 증가율은 올해(9.5%)에 이어 2년 연속 9%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0.6%)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고, 혁신성장과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재정확장 기조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 일본의 수출규제 등 갈수록 나빠지는 대외 여건이 고려됐다. 실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지출을 23조9000억 원으로 27.5%나 확대한 것을 비롯, 소재·부품·장비의 원천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17.3% 늘린 24조1000억 원, 건설·교통 등 사회간접자본(SOC)은 12.9% 증가한 22조3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고 성장이 후퇴하는 상황에서, 단기적 재정수지 악화를 감수하고라도 경제활력을 살리기 위한 공격적 재정의 역할은 크다. 그러나 이미 세수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총수입을 올해보다 1.2% 늘어난 482조 원으로 잡았다. 기업실적 악화로 법인세가 18.7%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세입에서 세출을 뺀 통합재정수지가 올해까지 흑자지만, 내년 31조5000억 원 적자로 돌아선다.
기재부는 이에 따라 적자국채 발행규모를 60조20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재정적자 등이 반영된 국가채무는 올해 740조8000억 원에서 내년 805조5000억 원가량으로 급증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7.1%에서 39.8%로 높아져, 그동안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40% 선에 육박한다. 기재부는 이 비율이 2021년 42.1%, 2022년 44.2%, 2023년 46.4%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건전성이 악화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문제는 확장재정이 제대로 쓰이면서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내년 예산 가운데 넓은 의미의 복지인 보건·복지·노동 분야가 181조6000억 원으로 20조 원 이상 늘어난다. 증가분의 절반(46.9%)가량이다. 복지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5.4%에 이른다.
재정지원 노인일자리 확대, 사회보장성 급여 강화, 기초생보 제도 개선, 기초연금 인상, 건강보험 국고지원 등의 지출이 크게 증가하는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지만 단기 알바성 일자리가 늘어날 뿐 고용지표의 의미 있는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동수당, 출산장려금, 영·유아 보육비 등 현금을 퍼부어도 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떨어졌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복지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와 재정지출의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