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주덕후' 이광식 작가 "첫애인 얼굴은 잊어도 토성의 첫 기억은 못 잊죠"

입력 2019-09-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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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콘서트' 10쇄 이상 낸 우주 전문가…"별은 우리의 어버이고 고향"

▲이광식 작가가 지난달 20일 인천 강화군 내가면에 위치한 원두막 천문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현대인이 앓고 있는 돌림병이 있는데, 저는 '우주 불감증'이라고 말합니다. 우주를 잊고 사는 거예요. 그럼 가치관이 굉장히 한쪽으로 쏠리게 되죠. 현대인에게 우주 감수성이 필요해요. 저는 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아, 해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반대로 돌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쩌다 이 희한한 세상에 살게 됐나 싶어요. 내 존재가, 이 우주가 참 경이롭습니다."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우주교'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돈 쓰는 재미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휴대전화도 없이 사는데, 유일한 낙은 직접 만든 '원두막 천문대'에서 별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는 우주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우주밖에 모르는 이광식 작가(58)를 사람들은 '우주 덕후'라고 부른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의 마지막 주, 이 작가를 만나기 위해 강화도 서쪽 퇴모산을 찾았다. 휴대전화도 없는 그와 사전에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잔신경 쓰기 싫어서 휴대전화를 쓰지 않아요. 저는 용돈의 개념이 없는 사람이에요. 담배도 안 하죠, 술도 안 하죠. 돌아다니면서 사람 만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는 일이라곤 빈둥빈둥하면서 별 보거나 책 보는 거고, 글 쓰는 거죠. 강의는 여기저기 좀 많이 들어와서 그때 외출하곤 합니다."

겸손한 척(?) 해도,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우주·천문 과학 분야 유명 저술가다. 10쇄 이상 찍어낸 책만 여러 권이다. '천문학 콘서트', '십대, 별과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천문학 콘서트' 개정판도 냈다.

신작 이름은 '우주 덕후 사전'이다. "출판사에서 제목을 지어줬어요. 저는 스스로 덕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덕후라고 붙여주더라고요."

'우주 덕후'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원두막 천문대'라는 개인 관측소로 안내했다. '원두막 천문대'는 2014년에 올렸다. '천문학 콘서트' 인세로 올린 거라고 했다. 그는 "태양의 민낯은 인류의 1%도 못봤다"라며 굴절 망원경, 뉴턴식 반사망원경을 꺼내 이것저것 설명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

▲이 작가에게 '원두막 관측소'는 놀이터다. 그는 출판사 운영을 접고 강화도에 완전히 안착한 것도 "빛 공해 적은 곳에서 별을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우주 덕후'가 맞는 것 같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저는 우주 전도사라 그냥 보낼 수 없어요. 가장 좋은 망원경이 뭔지 아세요? 수천만 원짜리 망원경보다 초라하더라도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 본 망원경이에요."

다음은 이 작가와 일문일답.

- 처음 우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저보다 9살 많은 형이 '얘들아, 별 좀 봐라. 너희는 지금 저 별을 보고 있지만, 저 별이 저기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몰라'라고 말했어요. 형은 별과 지구의 거리가 너무 얼어서 빛이 오는데도 수십, 수백 년이 걸려서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대요. 그리고 빛처럼 빠른 로켓을 타고 저 별에 다녀오면 지구는 몇백 년이 흘러갈 수 있다는 거예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였던 거죠. 저는 10년 인생 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이었어요. (웃음) 충격이었죠.

성인이 돼서도 그 얘기는 머리에 늘 남아있었어요. 우주가 참 궁금해지더라고요. 청계천 헌책방을 훑었는데, 한 권도 없더라고요. 시간이 흘러서 출판사 운영을 하게 됐는데, 제 마음속에는 늘 우주에 대한 화두가 있었어요. 우주에 대해 공부하고 사색하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던 거죠.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깥을 보는데 '조등'이 걸려있는 걸 봤어요.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죽으면 조등 하나 걸어놓고 끝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억울했어요. 빨리 정리하고 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미련이 남진 않았나요?

"상당히 흑자가 나던 출판사였으니 임자도 빨리 나왔죠. 미련 없이 넘기고 강화도에 완전히 들어왔어요. 빈둥빈둥하는 게 제 꿈이었어요. 게으름 피우다가 읽고 싶은 책 실컷 보고요. 모든 사람의 로망인 '백수의 꿈'을 실현한 거죠. 천문학책을 100권 넘게 봤어요. 천문학책은 5분 만에 잠이 온다고 수면제로도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재미없거든요. 이렇게 쓰면 누가 읽겠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느날 겨울, 제가 갖고 있던 자료 다 모아서 책 썼습니다. 그게 '천문학 콘서트'예요."

- 두 번째 책인 '십대, 별과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는 어떻게 쓰게 됐어요?

"한때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였어요. 하루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삶을 버리는데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들이 주루를 보고 좀 더 시각을 넓혔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독자가 이렇게 댓글을 남겼어요. '우주는 위대하다. 자살하지 마라. 잘나고 잘 살고 다 필요없다. 무의미하다. 오늘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라'라고요. 이 독자는 제가 원고 1000매를 써서 하고 싶은 말을 단 한 줄로 끝냈어요."

- 우주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태양을 보여주려고 하셨잖아요.

"별지기들은 많은 사람에게 우주를 보여주고 싶어 해요. 청계천에 가끔 망원경 갖고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토성 보여주는 이들도 있어요. 저도 처음 토성을 망원경으로 마흔 살에 봤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솥단지 같은 게 밤 하늘에 있는 거예요. 사진으로만 봤지,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 이후 토성이 문득 생각나요. 별지기들은 자기 첫애인 얼굴은 잊어버려도 토성을 처음 본 기억은 잊지 못합니다."

- 국내 최초의 천문 잡지 '월간 하늘'도 발행하셨습니다. 당시 반응이 어땠나요?

"시원찮았어요. 1992년에 시작해서 1995년에 끝냈습니다. 도저히 적자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우주 후진국이잖아요. 제대로 된 발사체도 갖지 못한 나라고요."

- 왜 우주에 대해 투자를 하지 않는 걸까요?

"우주 개발은 당장 돈이 안 되니까요. 미국은 우주 예산으로 1년에 수십 조를 쓰고 있는데, 단 1센트도 안 생깁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생명이 어떻게 나타났고,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나 같은 기본적인 과학 의문들을 탐구하기 위해 거액을 쏟는 거예요. 우리는 여유가 없어요."

▲태양의 민낯은 인류의 1%도 보지 못했다며 태양을 보여주기 위해 설명하고 있는 이 작가의 모습. 고이란 기자 photoeran@

- '원두막 천문대'는 말 그대로 개인 관측소잖아요. 수익 사업도 아니에요.

"제 놀이터예요. 망원경으로 우주 산책하는 곳이죠. 날 좋은 날 올라가서 성은도 보고 은하도 보고요. 별지기들은 망원경 갖고 항상 겨울 되면 산으로 들어가요. 빛 공해 없는 데로. 강화도로 온 것도 빛 공해가 그나마 적어서예요. 별지기들의 '성지'예요. 별 '성'자를 써서요.

별지기들은 남북 통일을 기다려요. 북한 하늘이 A급이거든요. 꿈의 낙원이에요. 인공위성 사진 보셨죠. 바다 같잖아요. 동해와 서해가 이어진 거 같아요. 빛 공해가 굉장히 적은 곳이 북한이에요. 한국에선 보이지 않는 은하수가 북한에선 보일 거예요. 개마고원에서 보면 기가 막히겠죠."

- 진정한 덕후의 기질이 느껴집니다.

"세상에는 두 집합의 사람이 있어요. 제 1집합은 우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 제 2집합은 우주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에요. 원소의 수는 1집합이 압도적으로 많죠. 강의 가면, 1집합의 사람들은 '우주와 내가 무슨 상관 있나' '우주를 안다고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라고 하기도 해요. 심하면, '시간 참 많은가보다'라고 비꼬기도 하죠. 우주가 자신과 관계없다는 건 정말 끔찍한 오해예요. 우주를 안다고 돈이나 밥이 생기진 않아요. 하지만 우주를 알면 자기 가치관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어요. 삶의 지혜도 주고요.

태양만 해도 50억년 전 지구랑 같이 태어나 100억년을 사는데, 우리 인간은 100년도 못살아요. 참으로 찰나를 살고 가는 거죠. 캄캄한 어둠 속에 모닥불 불씨 하나 띄운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데, 그 삶을 보다 가치있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헛된 욕심, 과욕을 부리면서 남에게 못 할 짓 하는 게 현명한가요? 우주는 절대 현명하지 않다는 깨우침을 줍니다."

- 인간은 한낱 미물 같아요.

"우주의 크기나 시간을 생각하면, 인간은 정말 보잘것없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태양계만 해도 전체 은하에 비하면 조약돌 하나밖에 안 돼요. 우리 은하도 전체 우주에 비하면 물 웅덩이밖에 안 되는 존재죠. 광대한 우주를 보고 별을 보면 70억 인구가 사는 이 지구가 그야말로 티끌이고, 우리 인류는 정말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해요."

- 반대로 광활한 우주가 두렵기도 해요. 우주는 미지의 세계잖아요.

"우주를 보면 인간이 너무나 미물 같다고 생각해서 천문학자들이 자살률이 가장 높을 거란 말도 있어요. 절대 아니에요. 천문학자들은 오히려 자유를 느껴요. 내 존재가 너무 작다고 느끼는 순간 자기를 어느 순간 놓게 돼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세상에 겁나는 것도 없고, 부러운 것도 없어요. 세상에서 제가 유일하게 겁내는 존재는 마누라밖에 없습니다. (웃음)"

- 외계인이 있어요?

"있어요. 하지만 만날 순 없어요. 우주가 너무나 넓은 곳이기 때문에요. 가장 빠른 로켓인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까지 40년이 걸렸어요. 빛으로 가면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예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이 태양이에요. 그다음으로 가까운 건 '프록시마 센타우리'인데, 이 별까지는 4.2광년이 걸리네요. 보이저호를 타고 가도 6, 7만 년이 걸리는 거예요.

우주의 나이가 138억년인데, 우리 인간이 문명을 이뤄서 외계로 통신을 한 지 100년도 채 안 됐죠. 은하만 하더라도 10만 광년이에요.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우리 문명의 시간은 너무나도 찰나입니다. 찰나와 찰나가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데, 외계인은 몇천 광년 밖에 있으니 불가능한 거죠. 지구에 인간이 생겨났으니 다른 외계 행성에도 지성체가 생기지 말란 법은 없어요. 다만 우주가 광대해서 만나기 힘들 뿐이죠."

▲이 작가는 "우주를 안다고 돈이나 밥이 생기진 않는다"면서도 "우주를 알면 가치관의 중심을 잡을 수 있고,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한편으론, 우주는 꿈을 향해 달린 인간의 시간과 끈기 있는 도전을 상징하잖아요.

"인간은 언젠가는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될 수도 있어요. 그 대안으로 우주 진출하는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해요. 보험 같은 거죠. 인간의 뿌리 깊은 지적 욕구이기도 하고요. 우주론적 측면에서 우리는 행운아예요. 라이프니츠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어요. 그는 '왜 우주는 텅 비어있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었어요. 이제 우리는 알아요. 우주는 빅뱅에서 출발했고, 만물의 근원은 빅뱅 공간에 나타난 수소로부터 생겨났다고요. 라이프니츠가 살아있다면 기뻐했을 거예요."

- 우주는 영원한 것인가요?

"우리의 근본은 별이에요. '메이드 인 스타(Made in star)'죠. 별로 빚어진 존재들이에요. 우리를 이루는 모든 물질은 빅뱅 공간에 나타난 수소를 비롯한 것들로 이뤄져 있잖아요. 인간이 별에 대해 갖고 있는 동경은 DNA 때문일 거라고 천문학자들은 말해요. 우리는 별에서 왔기 때문에 별을 동경하는 거죠. 별은 우리의 어버이고 고향이에요.

셰익스피어 소네트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머지않아 헤어질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라'. 우주를 생각하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귀결이 돼요. 가까운 것들을 사랑하세요. 우주가 가르쳐준 삶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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